[이지혜의 불협화음] 사랑이 어디 오색 크레용만으로 그려지나요

  • 이지혜·작곡가

입력 : 2010.02.17 22:52

뮤지컬 '로맨스 로맨스'

이지혜·작곡가
영국의 여성 동물학자 제인 구달의 연구에 따르면 침팬지는 즐김, 공포, 뿌루퉁함 등 적어도 5가지 이상의 확실한 표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동물 다큐멘터리 시청을 통해 이런 사실을 알게 된 후 표현력이 형편없는 배우들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쯧쯧, 침팬지만도 못하군.'

또 나는 가끔 생각한다. 관객이 뮤지컬에서 보기를 원하는 이야기의 스펙트럼은 침팬지 표정의 가짓수처럼 오색 크레용 색깔 그 너머는 아닐 수도 있다고. 그러니까 괜히 사유의 과정을 동반하는 복잡한 뭔가는 집어치우고 분노·슬픔·환희 등 곱씹을 필요 없는 단색(單色)의 감정들만 확실히 표현해 내는 것이 미덕일지도 모른다고. 대중이 뮤지컬을 보는 이유는 ①즐기고 난 뒤 잊고 싶어서 ②웅장한 무대와 춤 등에 감동받고 싶어서이지, 인디영화를 보는 마음으로 오는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1막의 알프레드(최재웅·왼쪽)와 조세핀(조정은). 각자 신분을 숨기고 새 사랑을 찾는다. / 애플팝 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럼에도 뮤지컬을 만드는 입장에서는 그 이상을 꿈꿀 수밖에 없는데, 두 개의 단막 뮤지컬로 이루어진 《로맨스 로맨스》 역시 24색 파스텔 정도는 가져야 그릴 수 있는 공연이다. 노래도 '끝났다- 박수!!!'라는 패턴의 뻔한 엔딩만을 추구하지는 않았으며 침팬지는 이해할 수 없는 '섞여진 감정들'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이게 쓴맛인지 단맛인지 딱 잘라 말할 수 없다. 서곡의 가사부터 "우리 인생의 과제/ 모든 작품의 소재/ 로맨스 로맨스/ 멋진 연극/ 실은 상극/ 꼬인 결말/ 다 거짓말/ 손잡고 연기들 하지/ 기쁨 슬픔 행복 통곡/ 또 다른 코메디"라니 말 다했지.

이 작품은 걸작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인물들의 엇갈리는 심리가 흥미로운 공연이다. 저예산 탓인지 상류사회를 보여줘야 할 의상들이 시골 문방구에서 파는 인형옷처럼 보였다는 점 등은 아쉬웠지만 무대 뒤에서 직접 이루어지는 밴드의 연주는 고급스럽다. 무대 위 네 배우 조정은·최재웅·이율·김수영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느냐고? '흐음, 호모 사피엔스가 틀림없군.'

▶4월 18일까지 대학로 이다1관. 1544-1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