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수·文人畵 등 테마 경매 띄울 것"

  • 손정미 기자

입력 : 2010.02.15 23:15

서울옥션 대표 이호재 회장

"회화와 조각 같은 순수미술품 외에 사진을 포함한 디자인 경매, 테마 경매 등을 합쳐 10회 정도에 머물던 경매 횟수를 많으면 20회까지 늘릴 계획입니다."

지난달 서울옥션 대표이사로 추가 선임된 이호재 가나아트 회장은 본지 인터뷰에서 다듬은 새 사업 구상을 밝혔다. 가나아트와 서울옥션을 설립한 이 회장은 2005년 이후 일선에서 물러나 있다가 서울옥션 대표로 나서면서 본격적인 행보를 예고하고 있다. 이 회장은 "국내 미술대학 재학생이 순수미술 분야는 2만명 정도이지만, 디자인과 사진 분야는 7만명이 넘는다"며 "그만큼 순수미술보다 디자인과 사진에 시장 잠재력이 크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올해 신설될 디자인 경매에는 국내 작가가 제작한 디자인 가구와 조명, 디자이너가 제작한 미술품 등이 주요 품목에 오른다.

이 회장은 4월 처음 실시될 테마 경매의 첫 주제는 '혼수'이며, 이후에 '문인화(文人畵)'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혼수' 경매에는 패물과 함·병풍 등 인간문화재가 만든 공예품을 취급할 예정이다. 이 회장은 신설되는 경매들이 작가에게 새로운 유통 경로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국내 사진작가들의 생활이 어려운데 사진경매가 시장을 만들 수 있다"면서 "인간문화재들이 제작하는 작품의 수준은 높지만 판로(販路)가 없었는데 역시 경매가 유통구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서울옥션 대표로 선임된 이호재 가나아트 회장. 이 회장은“그동안 고가 미술품에 치중돼있던 경매를 디자인과 사진, 테마 경매로 확대해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 주완중 기자 wjjoo@chosun.com
이호재 회장은 "지방 순회경매도 강화해 부산을 중심으로 대구·대전·광주에까지 확대하고 싶다"면서 "대구·대전·광주에는 최소한 본 경매를 위한 프리뷰라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백화점과 은행에서 필요로 할 때는 경매 대행에도 나설 것이며, 기업의 신제품 발표에도 경매를 도입하는 등 경매 자체를 사업 아이템으로 활성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회장은 자신이 일선에 나선 이유로 국내 미술품 경매회사의 실적이 호황이던 2007년에 비해 거의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진 것을 들었다. 그는 "경제 불황도 원인이지만 우리가 안이하게 대처했던 이유가 크다"면서 "경매를 생활화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이호재 회장이 4월부터 시작할 서울옥션의 디자인 경매에 나올 디자인 가구와 회화 작품. / 서울옥션 제공
이 회장의 등장에 미술계가 주목하는 것은 특유의 돌파력 때문이다. 이 회장은 1983년 가나아트갤러리를 세우면서 외국으로 눈을 돌렸다. 내로라하는 국내 작가들은 국내 주요 화랑들이 이미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해외로 나선 것이다. 1985년에 인상주의전(展)이 크게 성공하면서 이 회장을 바라보는 업계의 시선이 달라졌다. 이 회장은 세계적인 작가를 키워낸 레오 카스텔리 등을 만나 재스퍼 존스와 로이 리히텐슈타인 같은 굵직굵직한 해외 작가 전시를 기획했다. 1989년에는 국내 화랑 중에서 처음 법인으로 만들어 기업가적인 마인드를 보였다.

이호재 회장은 외환위기로 전전긍긍할 때인 1998년 서울 평창동에 가나아트센터를 개관하고 같은 해 서울옥션을 출범시켰다. 당시 주위에서 '무슨 화랑을 저렇게 크게 짓느냐' '3년을 못 버틸 것'이라며 손가락질했지만 평창동 공간을 갤러리뿐 아니라 레스토랑과 아트숍, 야외무대를 갖춘 복합예술공간으로 성공시켰다. 서울옥션을 뚝심 있게 운영하면서 국내 1위 미술품 경매회사로 키웠고, 2008년에는 홍콩에 진출했다.

이 회장은 "주위에서 아직 할 일이 많으니 전면에 나오라는 권유가 많았다"면서 "옥션뿐 아니라 내년부터 실시 예정인 미술품 양도세 도입을 앞두고 해야 할 일이 많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작가 2만5000명 중 작품이 거래되는 사람은 200명 정도에 불과하다"며 "이런 상황에서 양도세가 도입되면 거래가 위축돼 자칫 미술시장이 죽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