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0.02.10 23:44
우아한 선율 속에 슬픔·상처… 문득 떠오르는 첫 사랑의 추억
다양한 모습의 왈츠, 세계대전 겪으며 변화… 옛 榮華 그리는 음악으로
"저 따라오신 거 아니에요? 나는 나 쫓아온 줄 알았는데." 그 한마디에 쭈뼛거리던 인우(이병헌)도 그제야 멋쩍은 웃음을 짓습니다. 배경음악으로 서서히 왈츠가 깔리면, 붉은 노을 아래 검은 그림자의 두 남녀는 손을 맞잡고 춤을 춥니다.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의 한 장면입니다.
세 박자의 왈츠는 원래 유럽의 민속 춤곡이지만, 18세기 무렵에 이르면 궁정에서도 인기를 얻습니다. 당시 기록에는 "사람들은 미친 듯 춤을 췄다. 빈의 귀부인들은 특히 지칠 줄 모르고 추는 왈츠의 우아한 동작으로 명성이 높았다"고 적혀 있습니다.

힙합이 비보이(B-boy)들의 격렬한 동작이면서 동시에 흑인음악의 장르이기도 한 것처럼, 왈츠 역시 단순한 반주에서 벗어나 어엿한 기악곡으로 독립하기에 이릅니다. 피아노 독주곡으로 왈츠를 작곡한 쇼팽(1810~1849)이 대표적입니다. 브람스와 슈베르트, 차이콥스키와 베를리오즈 등이 피아노나 관현악에 왈츠를 녹여넣으면서, 본격적인 감상음악으로 격상된 것입니다.
물론 절정은 '왈츠의 왕' 요한 슈트라우스 부자(父子)입니다. 지금도 매년 정초마다 빈 필하모닉의 '신년 음악회'는 이들 부자의 곡으로 한 해를 열지요. 마지막 앙코르인 〈라데츠키 행진곡〉은 아버지 요한 슈트라우스 1세(1804~1849)의 곡이고, 그 직전에 울려 퍼지는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는 아들 요한 슈트라우스 2세(1825~1899)의 작품입니다.
이렇게 활짝 만개(滿開)한 왈츠는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다양한 모습으로 변모합니다. 핀란드의 시벨리우스는 당초 극음악 《쿠올레마》를 위해 작곡했던 곡을 〈슬픈 왈츠(Valse Triste)〉로 고쳐 씁니다.
죽음을 앞둔 부인이 꿈결에 왈츠 곡조를 듣고선 무심코 일어나 환상 속의 남자와 춤을 춘다는 내용으로, 우아함과 서글픔이 미묘하게 공존하기에 지금도 음악회의 앙코르로 사랑받습니다.
프랑스 관현악의 귀재(鬼才)인 라벨(1875~1937) 역시 왈츠의 매력에 흠뻑 매혹됐던 작곡가입니다. '관현악을 위한 무용 시(詩)'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왈츠(La Valse)〉를 발표한 것이 1920년입니다. 1차 세계대전 이전에 찬란했던 빈의 왈츠와 전쟁의 포화를 겪고 난 파리의 왈츠가 같을 수 없습니다. 우아하고 조심스럽게 출발한 춤곡은 천천히 절정에 오르더니, 오케스트라 합주가 정점을 찍고 나자 어지럽게 소용돌이칩니다. 상흔(傷痕)은 춤곡에도 녹아있는 것이지요.
그 뒤로 왈츠는 화려하고 평화로웠던 옛 영화(榮華)를 상징하는 음악이 됩니다. 앞서 언급한 영화에서 인우가 첫사랑을 상기하는 대목에서 왈츠가 흐르는 것도 어쩌면 이 때문입니다.
춤곡도 다른 생명처럼 탄생과 발전, 만개와 쇠퇴라는 과정을 겪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왈츠가 흐를 때, 삶의 어느 페이지가 떠오르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