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사라진 청아함… 살아있는 카리스마

  • 박세미 기자

입력 : 2010.02.07 23:33

휘트니 휴스턴 첫 내한 공연

청아하고 깊게 울려 퍼지던 목소리는 사라졌지만 열정과 관록은 그대로였다. '돌아온 디바' 휘트니 휴스턴(Houston·47)은 공연장을 가득 메운 1만1000여 팬들에게 그리움과 기쁨으로 다시 태어났다.

지난 6일 저녁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린 휴스턴의 첫 내한공연은 일본·호주·유럽으로 이어지는 휴스턴 월드투어의 출발점이자 마약 중독에 이어 이혼으로 1990년대 후반 이후 긴 슬럼프를 겪었던 그가 10년 만에 다시 선 무대였다.

전성기 때의 영상을 배경으로 휴스턴은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띠고 나타났다. 작년 9월 발표한 신곡 '포 더 러버스(For the Lovers)'를 시작으로 그녀는 '그레이티스트 러브 오브 올(Greatest Love of All)', '세이빙 올 마이 러브 포 유(Saving All My Love for You)' 등 20여곡의 다양한 레퍼토리를 들려줬다.

지난 6일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린 10년 만의 월드투어에서 열창하고 있는 휘트니 휴스턴./현대카드 제공

마약에서 벗어났다고 하지만 그의 가창력은 예전같지 않았다. 아무 저항 없이 매끄럽게 뽑아내던 고음, 숨 한번 몰아쉬지 않고 긴 여운을 안겨주던 호흡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공연 도중 몇 차례 기침을 내뱉었고 숨이 가빠지면 노래를 잠시 중단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관객들은 오히려 수렁에서 끝내 헤어나온 그녀에게 큰 박수를 보냈다. "아이 러브 휘트니(I love Whitney)!"라는 함성이 터졌다.

그의 25년 관록은 '슙 멜로디(Shoop Melody)', '이프 아이 톨드 유 댓(If I Told You That)' 등 신명나는 댄스곡에서 빛을 발했다. 그는 긴 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무대를 순식간에 장악했고 노래가 끊어져도 넉살 좋은 농담으로 관객을 웃게 만들었다. 데뷔 시절과 마이클 잭슨과의 인연을 털어놓을 땐 눈물짓기도 했다.

공연 말미 휴스턴이 특유의 떨리는 음색으로 영화 '보디가드'의 주제곡 '아이 윌 올웨이스 러브 유(I Will Always Love You)'의 첫 소절을 부르자 관객들 반응이 폭발했다. 거침없는 고음 대신 탁한 바이브레이션으로 채워졌지만 팬들을 20여년 전 그의 전성기로 데려가는 데는 아무 손색 없었다. 앙코르로 '밀리언 달러 빌(Million Dollar Bill)'을 끝으로 휴스턴은 무대 뒤로 사라졌다. 관객들은 공연장에 떠있는 잔향(殘響) 속에서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