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ABC] 동양의 시(詩)가 세기말 유럽의 비극적 선율로…

  • 김성현 기자

입력 : 2010.01.28 03:15 | 수정 : 2010.01.28 17:00

말러 '대지의 노래'

올해 탄생 150주년, 내년 서거 100주기를 맞이한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

"말러가 《대지의 노래》에 대해 처음 이야기할 때에는 제목이 '노래로 된 교향곡'이었다. 이 작품은 원래 교향곡 9번으로 계획됐지만, 작곡가의 마음이 바뀌었다. 베토벤과 브루크너에게 9번이 마지막 교향곡이었다는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는 운명과 맞서기를 주저했다."

18세 때 작곡가 말러(Mahler)를 처음 만난 뒤 평생 제자이자 벗으로 교유했던 명(名)지휘자가 브루노 발터(Bruno Walter)입니다. 함부르크 오페라극장과 빈 국립오페라극장 시절부터 지휘자 말러를 보좌했고, 말러 타계 후에는 《대지의 노래》와 교향곡 9번을 직접 초연한 주인공인 그는 말러 평전인 《사랑과 죽음의 교향곡》(마티)을 썼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베토벤 이후 '교향곡 9번'은 슈베르트와 브루크너까지 후배 작곡가들에게 넘을 수 없는 장벽이 됐고, 말러 역시 교향곡 9번에 이르자 무척이나 불안해했다고 털어놓습니다. 결국 말러는 이 교향곡에 숫자를 명기하지 않고 《대지의 노래》라고만 불렀습니다. 하지만 9번이라는 숫자를 붙인 다음 작품이 마지막 교향곡이 되면서 결국 징크스를 깨지 못합니다.

《대지의 노래》의 마지막 곡인 〈작별〉의 악보를 펴면서 말러는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조금이라도 참고 들어줄 만하던가. 이걸 들으면 사람들이 자살해버리지나 않을까"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훗날 발터는 "그는 삶의 무의미함을 술로 잊어버리고 마지막으로 깊은 우울 속에 내버려두고자 한다"고 술회합니다.

말러의 교향곡 《대지의 노래》는 서양 교향악의 역사에서 가장 불가사의한 작품 가운데 하나입니다. 교향곡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이백(李白)과 맹호연(孟浩然) 왕유(王維) 등 중국 시에서 비롯한 6곡의 노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본디 '가곡 같은 교향곡' '교향곡 같은 가곡'이야말로 말러 음악의 특징 가운데 하나이지만, 이 곡에서는 교향곡이라는 '외피'가 가곡이라는 '내용물'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노랫말 역시 곤혹스럽긴 마찬가지입니다. 19세기 유럽에는 중국 당시(唐詩)가 잇달아 소개되고 있었고, 말러 역시 번역본으로 이 시를 접하게 됩니다. 하지만 동양 특유의 자연친화적이고 탈속적인 세계관은 세기말 유럽의 낭만주의를 투과하면서 비극적이고 염세적인 정서로 탈바꿈합니다.

이런 세기말 유럽의 기묘한 오독(誤讀)이 깔려 있기에 《대지의 노래》는 우리에게 이중으로 어려운 작품입니다. 친숙한 동양 정서를 낯선 세기말 유럽의 음악으로 다시 감상해야 하는 것이지요. 문화와 문화가 서로 맞부딪칠 때는 오독마저 새로운 창조의 동력(動力)이 된다는 데 이 작품의 미묘한 재미가 숨어 있습니다.

▶서울시향(지휘 성시연) '대지의 노래', 2월 4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02)3700-6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