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0.01.26 02:16
66년 당시 고급 아파트… 市에서 철거 대신 매입해
작업·전시장 등 만들기로
"우리의 정 서린 곳 보존해 문화공간 꾸미니 잘된 일"

"예전엔 서울에서 내로라하는 고급 아파트였지. 관리사무실에서 고(故) 이주일씨랑 소주도 한잔했는데…."
동대문아파트에서 38년째 사는 이영운(63)씨의 눈에 지난 세월이 어렸다. 이씨가 사는 종로구 창신동 동대문아파트는 수십년 풍파를 견딘 흔적을 잔뜩 머금고 있었다. 페인트가 벗겨진 누런 벽에는 창문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아파트의 복도에는 집 밖으로 내놓은 장독대·의자·LPG가스통 등이 들어차 한 사람이 지나다니기에도 비좁았다. 집집마다 설치된 보일러 배관에는 겨울 찬바람에 하얀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1966년 대한주택공사가 지상 6층(131가구) 규모로 지은 동대문아파트는 지금은 없어진 동대문 실내스케이트장 옆 공터에 세워졌다. 이 아파트는 직사각형 모양으로 건물 안에 가로 6m, 세로 43m의 'ㅁ'자형 정원이 있는 우리나라 최초 중정(中庭)형 아파트다.
서울시는 "이 양식은 대규모 공간이 필요 없어 도시 경관을 해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서울에 아파트가 본격적으로 들어서기 시작한 1960~70년대에 많이 지어졌다"며 "아파트 가운데 정원을 들인 독특한 구조로, 지금의 대규모 아파트보다 '인간적'이라는 평을 듣는다"고 말했다.
◆아파트 단지 내 네모난 정원, '장안의 화제'
직사각형 단지 가운데 정원을 만든 동대문아파트는 장안의 화제였다. 방 2개, 욕실 1개로 가구당 29.75㎡(약 9평)의 좁은 아파트지만 단독주택이 대세를 이루던 당시에는 '최고급' 아파트로 통했다. 숭인동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고 있다는 이경숙(55)씨는 "주위에 아파트가 없어서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돈을 번 장사꾼들이 많이 살았다"고 말했다.
당시 최고의 코미디언이었던 이주일씨가 살아 '연예인 아파트'라고 불리기도 했다. 원로가수인 고(故) 계수남씨도 이 아파트에서 눈을 감았다. 이영운씨는 "계수남씨와 1층 아파트 안 공원에서 만나 같이 웃고 떠들던 때가 엊그제 같다"며 "정원은 주민들이 마음을 열어놓고 이야기꽃을 피우는 '동네 사랑방' 역할을 했다"고 회고했다.
장독대와 자전거, 화분 등으로 채워진 정원 위에는 '다리'가 놓여 있다. 'ㅁ'자 정원을 중심으로 좌우로 분리된 아파트 복도를 연결, 주민들이 왕래하고 있다. 주민들은 떨어진 양쪽 복도에 줄을 연결해 빨랫줄로 사용했다. 햇볕이 좋은 날이면 아파트 단지 내 하늘에는 각양각색의 빨래가 만국기처럼 널렸다.
동대문아파트에서 38년째 사는 이영운(63)씨의 눈에 지난 세월이 어렸다. 이씨가 사는 종로구 창신동 동대문아파트는 수십년 풍파를 견딘 흔적을 잔뜩 머금고 있었다. 페인트가 벗겨진 누런 벽에는 창문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아파트의 복도에는 집 밖으로 내놓은 장독대·의자·LPG가스통 등이 들어차 한 사람이 지나다니기에도 비좁았다. 집집마다 설치된 보일러 배관에는 겨울 찬바람에 하얀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1966년 대한주택공사가 지상 6층(131가구) 규모로 지은 동대문아파트는 지금은 없어진 동대문 실내스케이트장 옆 공터에 세워졌다. 이 아파트는 직사각형 모양으로 건물 안에 가로 6m, 세로 43m의 'ㅁ'자형 정원이 있는 우리나라 최초 중정(中庭)형 아파트다.
서울시는 "이 양식은 대규모 공간이 필요 없어 도시 경관을 해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서울에 아파트가 본격적으로 들어서기 시작한 1960~70년대에 많이 지어졌다"며 "아파트 가운데 정원을 들인 독특한 구조로, 지금의 대규모 아파트보다 '인간적'이라는 평을 듣는다"고 말했다.
◆아파트 단지 내 네모난 정원, '장안의 화제'
직사각형 단지 가운데 정원을 만든 동대문아파트는 장안의 화제였다. 방 2개, 욕실 1개로 가구당 29.75㎡(약 9평)의 좁은 아파트지만 단독주택이 대세를 이루던 당시에는 '최고급' 아파트로 통했다. 숭인동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고 있다는 이경숙(55)씨는 "주위에 아파트가 없어서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돈을 번 장사꾼들이 많이 살았다"고 말했다.
당시 최고의 코미디언이었던 이주일씨가 살아 '연예인 아파트'라고 불리기도 했다. 원로가수인 고(故) 계수남씨도 이 아파트에서 눈을 감았다. 이영운씨는 "계수남씨와 1층 아파트 안 공원에서 만나 같이 웃고 떠들던 때가 엊그제 같다"며 "정원은 주민들이 마음을 열어놓고 이야기꽃을 피우는 '동네 사랑방' 역할을 했다"고 회고했다.
장독대와 자전거, 화분 등으로 채워진 정원 위에는 '다리'가 놓여 있다. 'ㅁ'자 정원을 중심으로 좌우로 분리된 아파트 복도를 연결, 주민들이 왕래하고 있다. 주민들은 떨어진 양쪽 복도에 줄을 연결해 빨랫줄로 사용했다. 햇볕이 좋은 날이면 아파트 단지 내 하늘에는 각양각색의 빨래가 만국기처럼 널렸다.

1980년대 들어 아파트 건설붐이 일자 동대문아파트 위상도 변하기 시작했다. 돈 많은 사람들은 더 넓은 평수를 찾아 좁은 아파트를 박차고 나갔다. 그 자리엔 '밤일'을 나가는 유흥업소 여성들과 직장인들이 들어왔다. 동대문아파트 근처에서 20년째 세탁소를 운영하는 60대 할아버지는 "1990년대 들어서는 파키스탄·네팔·중국 등 외국인 노동자들이 싼 방을 찾아 이곳으로 몰려왔다"고 했다. 실제로 아파트 복도에는 '쓰레기 절대 금지'라는 게시물과 함께 영어로 'Don't Dump Garbage Here'라는 말도 쓰여 있다.
영세 세입자들은 보증금 500만원, 월세 40만원에 둥지를 틀었다. 현재 131가구 중 110가구가 세입자다. 이 아파트에 7년째 사는 채옥형(60)씨는 "오래된 아파트라 수도가 공동수도인데 돈이 없어 수도요금을 안 내는 사람이 많다"며 "2005년에는 그동안 밀린 전체 수도요금 1200만원을 못 내 물이 끊긴 적도 있다"고 했다.
◆철거위기 넘기고 예술창작 공간으로
지난 2007년 40여년이 넘은 이 동대문아파트가 철거 위기에 놓였다. 창신·숭인 뉴타운 내에 이 아파트가 포함된 지역이 재건축 예정지역으로 지정돼 사업이 본격 추진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사진작가들이 찾아와 "곧 없어질 공간을 기록으로 남기겠다"며 아파트를 앵글에 담았다. 영화 '세븐데이즈'에도 등장했는데, 살인 범죄가 일어난 공간을 표현하기에 아파트의 낡고 허름한 분위기가 제격이었기 때문이다.
철거위기에 놓인 이 아파트는 최근 극적으로 기사회생했다. 서울시가 아파트를 철거하는 대신 건물을 매입해 리모델링을 거쳐 예술가들의 작업공간과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서울시 김명용 뉴타운사업1담당관은 "서대문구 원일아파트, 안산맨션, 마포구 현대아현아파트 등도 중정형 아파트지만, 동대문아파트가 가장 역사가 오래되어 보존하기로 했다"며 "뉴타운 내 오래된 아파트를 매입해 문화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예상했던 재건축 대신 갑작스러운 보존 결정에 놀라는 표정이다. 주민들에 대한 보상금은 200억~300억원, 리모델링비는 100억원 정도로 예상된다. 아파트 1층에서 복사집을 운영하는 조중석(60)씨는 "우리의 정이 녹아 있는 아파트를 보존해 더 많은 사람들이 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꾸민다면 잘된 일"이라면서도, "가구주와 세입자에 대한 충분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아파트의 벽을 뚫고 확장해 대규모 전시실을 만들거나, 가구별로 예술가 작업장으로 꾸미는 방안을 놓고 검토 중"이라며, "서민들의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동대문아파트를 보존해 예술 창작공간이자 주민들의 문화 향유 공간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영세 세입자들은 보증금 500만원, 월세 40만원에 둥지를 틀었다. 현재 131가구 중 110가구가 세입자다. 이 아파트에 7년째 사는 채옥형(60)씨는 "오래된 아파트라 수도가 공동수도인데 돈이 없어 수도요금을 안 내는 사람이 많다"며 "2005년에는 그동안 밀린 전체 수도요금 1200만원을 못 내 물이 끊긴 적도 있다"고 했다.
◆철거위기 넘기고 예술창작 공간으로
지난 2007년 40여년이 넘은 이 동대문아파트가 철거 위기에 놓였다. 창신·숭인 뉴타운 내에 이 아파트가 포함된 지역이 재건축 예정지역으로 지정돼 사업이 본격 추진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사진작가들이 찾아와 "곧 없어질 공간을 기록으로 남기겠다"며 아파트를 앵글에 담았다. 영화 '세븐데이즈'에도 등장했는데, 살인 범죄가 일어난 공간을 표현하기에 아파트의 낡고 허름한 분위기가 제격이었기 때문이다.
철거위기에 놓인 이 아파트는 최근 극적으로 기사회생했다. 서울시가 아파트를 철거하는 대신 건물을 매입해 리모델링을 거쳐 예술가들의 작업공간과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서울시 김명용 뉴타운사업1담당관은 "서대문구 원일아파트, 안산맨션, 마포구 현대아현아파트 등도 중정형 아파트지만, 동대문아파트가 가장 역사가 오래되어 보존하기로 했다"며 "뉴타운 내 오래된 아파트를 매입해 문화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예상했던 재건축 대신 갑작스러운 보존 결정에 놀라는 표정이다. 주민들에 대한 보상금은 200억~300억원, 리모델링비는 100억원 정도로 예상된다. 아파트 1층에서 복사집을 운영하는 조중석(60)씨는 "우리의 정이 녹아 있는 아파트를 보존해 더 많은 사람들이 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꾸민다면 잘된 일"이라면서도, "가구주와 세입자에 대한 충분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아파트의 벽을 뚫고 확장해 대규모 전시실을 만들거나, 가구별로 예술가 작업장으로 꾸미는 방안을 놓고 검토 중"이라며, "서민들의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동대문아파트를 보존해 예술 창작공간이자 주민들의 문화 향유 공간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