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욱 미술토크] 물랑루즈의 난쟁이화가

  • 글·컨텐츠 제공_서정욱

입력 : 2010.01.18 16:44

툴루즈 로트렉

영화 '물랑루즈'입니다.
바즈루어만 감독 연출에 이완 맥그리거, 니콜 키드먼이 주연을 맡은 2001년 뮤지컬 영화입니다.
혹시 이 영화를 보셨다면 흥겨운 한 난쟁이를 기억하시나요?
툴루즈 로트렉 입니다.

물랑루즈를 다룬 영화는 지금까지 총 6편이 만들어졌습니다.
특히 자자 게이보(Zsa Zsa Gabor)가 부르는 노래로 유명한 1952년 존 휴스턴 감독 호세페러 주연의 물랑루즈를 보셔도 한 난쟁이 화가가 나옵니다.
바로 툴루즈 로트렉 입니다.

1889년 개장한 물랑루즈는 파리의 몽마르뜨에 있는 카바레입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거대한 빨간 풍차가 서 있는 에디트 피아프와 이브 몽땅이 처음 만난 곳.
프랭크 시나트라가 노래했던 곳… 빨간 풍차 물랑루즈.


과학이 발달해 타임머신을 타고 1890년쯤 그때의 몽마르뜨의 물랑루즈에 갈수 있다면 우리는 한쪽 귀퉁이에서 술을 마시며 열심히 그림에 몰두해 있는 한 난쟁이화가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툴루즈 로트렉입니다.

툴루즈 로트렉은 물랑루즈의 지배인과 약속을 했습니다.
그림을 그려주는 조건으로 언제나 이곳에서 술을 먹기로…
몽마르뜨에서 그는 이미 유명합니다. 옷걸이나 커피포트 등으로 불리기도 하죠.

그의 그림에선 그저 그런 모습들 만이 아니라 그들의 속 이야기들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궁금해집니다.
툴루즈 로트렉에겐 사람들의 속마음들을 꿰뚫어보는 능력이 있는 걸까요?

12시 자정 문을 닫는 물랑루즈를 나와 툴루즈 로트렉은 다시 술을 마시러 갑니다.
정작 툴루즈 로트렉에겐 어떤 이야기가 있는 걸까요?

툴루즈 로트렉의 본명은 앙리 마리 레이몽드 툴루즈로트렉 몽파 입니다.
프랑스 귀족 중에서도 매우 유서 깊은 귀족이란 뜻이지요. 그 귀한 가문의 아들로 태어난 툴루즈 로트렉의 부모님은 친사촌간 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근친혼의 불행한 결과였는지 툴루즈 로트렉 은 어려서부터 매우 허약한 체질이었습니다.

14세에 사고로 다리를 다친 후 그의 다리는 더 이상 자라지 않았습니다. 툴루즈 로트렉은 다리가 불편해진 이후로는 더욱 더 그림에 심취하게 됩니다. 결국 스물두살이 되던 해 툴루즈 로트렉은 집을 떠나 몽마르뜨로 갑니다.

그곳에서 그는 미친 듯이 그림을 그립니다. 그리고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술을 마십니다. 기이한 그의 모습과 행동 때문에 그를 환락가의 퇴폐화가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툴루즈 로트렉은 그런 것엔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림 하나로 결국 몽마르뜨의 사람들이 그를 인정하게 합니다. 그는 어떤 경향이나 사조도 따르지 않았으며 독자적인 자신의 그림을 그렸고 현대 디자인 포스터의 시작이 되며 후에 근대 소묘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됩니다.


그의 열정이 이제 다 소진 되었던 걸까요? 서른 다섯살이 되던 해 10월 툴루즈 로트렉은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정신이상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그리고 요양하던 중 37세의 젊은 나이로 아쉽게도 세상을 떠납니다.

그가 죽은 후 큰 슬픔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그의 어머니는 남겨진 아들의 작품을 전부 챙겨 로트렉의 고향인 알비시에 기증하였고, 1922년 알비시엔 로트렉미술관이 개관됩니다.

Aristide Bruant dans son Cabaret, 1893, Colored lithograph, San Diego Museum of Art, USA/사진제공=서정욱
At the Moulin Rouge, The Clowness Cha-U-Kao, 1895, Oil on canvas, Musee d_Orsay, Paris, France/사진제공=서정욱
In Bed, The Kiss, 1892, Thinned oil on cardboard/사진제공=서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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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영상 제공 : 서정욱 갤러리 대표 서정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