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0.01.18 03:14
바흐(Bach)나 비발디(Vivaldi) 같은 바로크 음악 연주회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보통 목관이나 금관, 타악기와 현악 순으로 세우는 현대식 대형 오케스트라와는 사뭇 다른 순서입니다. 도대체 무슨 까닭일까요.
족보나 계열이 서로 다른 이들 악기가 한데 묶일 수 있는 것은 연주에서 맡은 역할이 같기 때문입니다. 바로크 음악에서 하프시코드, 첼로와 더블베이스, 한 걸음 더 나아가 류트와 기타, 하프와 오르간 등이 종종 맡는 역할을 '통주저음(通奏低音)'이라고 부릅니다. 이탈리아어로 '바소 콘티누오(Basso continuo)'라고 하는 것으로, 바로크 음악에서 연속적인 저음을 담당하면서 조성이나 리듬의 질서를 부여하는 걸 뜻합니다.

'통주저음'의 연원은 무척이나 깁니다. 1598년 이탈리아 로마의 연주지침을 보면 "오르가니스트는 특히 왼손으로 오르간 대목을 단순하게 연주해야 한다. 오른손으로 카덴차나 적절한 장식음을 넣고 싶을 때도, 지나치게 많은 동작으로 합창단이나 독창자를 덮어버리거나 혼동을 줘서는 안 된다"고 규정했습니다. 우선은 조연의 본분에 충실하라는, 일종의 잔소리인 셈입니다.
가수 스팅이 활동했던 록 그룹 폴리스(The Police)의 불멸의 히트곡인 '에브리 브레스 유 테이크(Every Breath You Take)'에도 이와 유사한 대목이 있습니다. 곡 도입부터 베이스기타와 드럼이 일정한 패턴을 반복하면서 리듬감을 빚어내지요. 이때 베이스기타와 드럼이 맡은 역할은 사실상 '통주저음'과 흡사합니다. 스팅은 이 저음 위에서 맘껏 노래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반주 없이 노래하는 아카펠라 합창에서도 저음(低音)을 맡은 가수들이 일정한 반복으로 '두비두바'라고 읊조리면, 고음(高音) 성악가들이 선율을 자유롭게 부릅니다. 이렇듯 저음을 깔아주는 역할도 통주저음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재즈 밴드에서 피아노와 베이스·드럼을 리듬 악기로 한데 묶는 것도 비슷한 이치이지요.
17~18세기 유럽의 바로크 시대에는 악보에 저음의 음표와 함께 간단한 숫자만 표기해서 화음을 만들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숫자표저음(數字標低音)으로도 불리지요. 이렇게 저음 부분을 간략하게 표기하면, 연주자들이 상상력을 가미해서 넣거나 더하면서 즉석에서 통주저음을 만들기도 합니다. 상대적으로 연주자의 자율성이 늘어나는 것입니다. 이처럼 바로크 시대에는 통주저음이 비교적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었지만, 고전파 시기로 접어들면서 점차 오케스트라로 통합되기에 이르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