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0.01.15 03:02 | 수정 : 2010.01.15 10:00
'1인 다역' 수원시향 상임지휘자 김대진
꼭 하나만 고르라면 가르치는 일 택할 것… 자기그릇 열심히 채우면 관객은 감동받게 돼 있어
―지나친 '사업 다각화'는 아닌가. 욕심꾸러기 같다.
"음악에 대한 욕심이 많은 건 사실이다. 비즈니스맨이라는 욕도 먹는다. (웃음) 하지만 물이 흘러가고 있는데, 두렵다고 배에 올라타지 않는 것도 비겁한 일이다. 허황된 욕심이 아닌 이상, 욕망이 예술가를 자극하는 것은 사실 아닐까."
―지금 하고 있는 일 중에서 한 가지만 골라야 한다면 무얼 선택하겠는가.
"당연히 가르치는 거다. 1994년 귀국할 때에도 음악 하는 아이들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책임이 늘어난다고 초심을 잊는다면, 나 자신을 배반하는 거다."
―지휘와 실내악보다 가르치는 일이 앞선다는 것은 의외다.

"스승인 고(故) 오정주 교수(서울대)께서 1983년 대한항공 007편 피격 사건으로 타계하셨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미국 유학을 떠날 때까지 줄곧 사사했기에 정신적 지주를 잃은 것과 다름없었다. 그 때문인지 교육에 더욱 사명감을 갖는다."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김선욱 등을 길러낸 명(名)스승으로 유명하고, '콩쿠르 입상 제조기'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주변에서 '3번 타자'에 대한 기대감도 적지 않다.
"그런 기대가 한동안 큰 부담이 됐다. 하지만 '열음이나 선욱이를 가르칠 때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서 나 자신을 다그쳤다. 현실적 조건을 따져가며 가르치는 건 위험할 뿐 아니라, 아이를 망치는 길이다."
―그래도 제자를 가르치거나 콩쿠르 심사를 하다 보면, 현실적 조건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는 것 아닌가.
"지난해 독일 베토벤 콩쿠르에서 동료 심사위원에게 들었던 '예전에는 음악인(musician)을 뽑았다면 요즘엔 '마술사(magician)'를 기대하는 것 같다'는 말이 잊히지 않는다. 자기 자신을 보여주기 위해 나가지만, 반복되다 보면 어느새 정체성을 잃을 수 있는 것이 콩쿠르의 역설이다."
―다른 국내 교향악단들이 굵직한 말러 교향곡 연주 일정을 발표하는데, 수원시향은 거꾸로 예술의전당과 베토벤 시리즈를 진행한다. 혹시 후진이나 '역주행'은 아닌가.
"물론 보수적으로 비칠 우려도 있다. 해외 유명 오케스트라의 음반으로 이미 잘 알려진 곡들이어서 비교하기도 쉽고, 비판이 쏟아지지 않을까 걱정도 든다. 하지만 단원 오디션부터 지난해 뉴욕 카네기홀 연주회까지 어려움을 함께 딛고 나가면서 친화력이나 목관 앙상블은 국내 어느 악단 못지않다고 자부한다."
―수원시향 단원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잔소리는 무엇인가.
"우리의 그릇을 베를린 필과 비교할 수는 없을지 모르지만 어떤 크기의 그릇이라도 가득 채우면 관객은 감동을 받게 돼 있다는 것이다. 고통스럽더라도 그릇을 채우는 과정이 중요하다."
▶수원시향 베토벤 시리즈, 2월 11일부터 12월 9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02)580-1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