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0.01.14 03:32
연극 '바냐 아저씨'
같은 날 사랑을 떠나보낸 바냐(김명수)와 소냐(김지성)는 방전된 전지처럼 무기력해진다. 일에 매달려 보지만 바냐의 통증은 더 깊어만 간다. 소냐가 그에게 건네는 위로는 러시아 극작가 체호프(1860~1904)가 자신에게 거는 주문(呪文) 같다. "어떻게 하겠어요. 그래도 살아야죠. 우리 살아나가요." 이 순간 무대가 시계방향으로 천천히 돈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간다.

체호프의 연극 《바냐 아저씨》(연출 심재찬)는 의사 아스트로프(김수현)가 시골의 무더운 날씨와 지루한 일상을 불평하며 열린다. 농부 바냐는 대학에서 퇴직한 매부(妹夫) 세레브랴코프(이종구)가 젊은 후처 엘레나(이지하)를 데려오자 그에 대한 증오와 엘레나에 대한 연정으로 복잡해진다. 하지만 엘레나의 마음은 아스트로프에게 가 있고, 바냐의 조카 소냐는 또 아스트로프를 짝사랑한다. 《갈매기》에서처럼 뒤엉키는 남녀관계다.
130분간 꼼짝 않고 앉아 있어야 했지만 객석에는 자주 웃음이 번졌다. '지루하지 않은 체호프'라는 점에선 반가웠다. 한성식의 기타 연주는 드라마의 감정을 들려줬다. 하지만 김지성·김명수의 몰입과 이지하의 희극적인 대사 처리는 종종 불화를 나타냈다. 진폭이 큰 연기를 소화한 김지성이 돋보였다.
올해는 체호프 탄생 150주년이다. 《바냐 아저씨》는 꿈과 좌절, 사랑과 소멸을 이야기하면서 우리 시대 관객과도 통했다. 추상적인 무대 디자인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긴 탁자를 가운데 놓고 동그라미·세모·네모 형태의 나무들과 사방이 뻥 뚫린 기하학 구조물들로 그것을 에워쌌다. 집 같고 무덤 같은 구조물들은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서야 무대 중앙에 모이며 하나의 세계를 보여줬다. 심플했지만 미학적이거나 기능적인 효과는 작았다.
▶17일까지 서울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02)762-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