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0.01.14 03:32 | 수정 : 2010.01.15 10:50
당신이 뮤지컬 애호가이고 실험적인 토종 뮤지컬 한 편을 보고 싶다면, 지금 올림픽공원으로 가보라고 말하고 싶다. 극장이 몰려 있는 대학로나 강남과는 다른 방향이지만 최고 시청률 46.7%를 기록하며 2009년 대표 TV 드라마로 등극했던 《선덕여왕》의 뮤지컬 버전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실험을 지켜보는 일은 종종 당황스럽고 고통도 따른다. 일단 62부작의 방대한 원작 드라마는 무대에서 150분으로 압축됐다. 내용은 원작과 별 차이가 없지만 미실의 경우 절제된 대사와 자태, 노래가 주로 부각되면서 드라마의 캐릭터가 유지된다. 덕만과 유신도 대사와 주요 이중창을 통해 교감을 이룬다. 하지만 비담과 춘추는 많은 생략이 가해져 그들을 이해하려면 원작에 의존해야 한다.

첨성대 형태의 포털 세트에 달린 20개의 LED 모니터에서는 출연진의 얼굴이 담긴 뮤직비디오가 음악에 맞춰 상영된다. 조명도 차가운 질감의 무빙라이트가 절대적이다. 화려한 색감과 함께 관능과 활동성을 고려한 이상봉의 의상은 과감한 디자인이 돋보인다. 미실이 초반에 앙상블과 등장하는 장면은 밥 크롤리가 무대와 의상을 맡은 뮤지컬 《아이다》에서 암네리스 공주의 패션쇼와 매우 흡사하다. 하지만 미실이 암네리스 공주처럼 희극적인 인물이 될 수는 없기에 댄스 시퀀스로까지는 발전되지 못한다.
김현보가 작곡한 28곡의 뮤지컬 넘버들은 사이키델릭 록에서 테크노에 이르기까지 너무 많은 장르를 한 무대에 담다 보니 드라마 속에서처럼 일관된 형식미를 찾기 어렵다. 그럼에도 멜로디 라인에서는 기대 이상의 완성도를 보여주었다. 특히 전투 현장에서 부르는 덕만(이소정)과 유신(이상현)의 러브 테마곡은 두 배우의 뛰어난 가창력이 뒷받침되어 설득력 있는 장면으로 빚어졌다.
뮤지컬 《선덕여왕》(연출 김승환)은 흥행 드라마의 익숙한 스타일을 포기하는 대신 디지털 환경 속에서 숨 쉬며 스마트폰으로 소통하는 현대인에게 '하이테크 뮤지컬'을 실험하고 있다. 하지만 무대는 엄연히 인간이 중심인 '로테크'의 세계다. 첨단기술이 눈을 호사스럽게 하지만 가장 큰 감동을 주는 건 결국 자연 그 자체인 배우들의 호연(好演)이다.
▶31일까지 서울 우리금융아트홀. 1544-1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