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0.01.13 03:23
일본서 특별공연… 광주고 연극반원
억제 못하는 '끼' 발산 전국연극제서 국무총리상… 사회풍자극 능숙히 소화
이들이 무대에 올린 작품은 좋은 학벌을 위해 사교육에 매달리는 한국사회 현실을 꼬집은 '비싼 사과의 맛'. 사이코드라마 수업을 하고 있는 의과대학 강의실을 배경으로 한 이 연극에서 배우들은 의사(교수)와 의대생, 간호사 배역을 나눠 맡았고, 객석에 앉은 일본 청소년 400여명은 수업 참관을 위해 온 학생들이 됐다. '의사'를 '비싼 사과'에 비유하며 의대생들에게 엘리트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라고 강조하는 교수가 사이코드라마 수업에서 환자와 대화를 나누면서 점차 자신이 겉만 빛내기 위해 농약을 잔뜩 머금은 '비싼 사과'임이 드러난다는 줄거리다.
◆한국대표로 일본서 공연한 광주고 연극반
광주고 연극반은 작년 11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제13회 전국청소년연극제에서 이 작품으로 국무총리상인 대상을 수상했다. 지도교사상(김재환)·최우수연기상(고3 고용선)·우수연기상(고3 최두영)도 광주고 몫이었다. 광주고 연극반은 대상 수상으로 한국 청소년 대표 작품으로 선정됐고, 이날 축하공연은 대상 수상팀으로서 한국 청소년연극을 대표해 선보이게 된 것이다.
사단법인 한국연극협회와 예술의전당 공동주최로 1997년 제1회 대회를 시작한 전국청소년연극제는 연극에 관심을 가진 전국 고등학생들의 연극경연 축제이다. 매년 16개 시·도에서 200여개 팀이 출품해 지역 예선을 거친다.

연극을 지도한 이기복 교사는 "2007년 만든 연극반이 경험이 적어 대상을 목표로 하진 않았는데 의외로 좋은 결과가 나왔다"며 "프로가 아닌 학생들이 소화하기 어려운 사이코드라마 형식을 택해 '남자 고등학교에서 오랜만에 좋은 작품 나왔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말했다.
◆편견 딛고 전국청소년연극제 대상
광주고 연극반은 고1~3학년 17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하나같이 '배우'가 되려는 꿈을 꾸고 있다. 대학도 대부분 연극영화과나 전문 무대스태프를 양성하는 학과로 진학한다.
다른 사람을 웃기는 걸 좋아한 박현규(19)군은 1학년 때 개그맨이 되고 싶어 연극반에 들어왔다. 하지만 지금은 연극에 더 매력을 느낀다. 올해 청주대 연극영화과에 합격해 본격적인 연극·연기 공부에 매진할 계획이다.
박군은 "연극반 초창기엔 야간자율학습 대신 연극반 연습 간다고 하면 선생님들이 '너만 빼 주면 안 된다'며 안 좋게 봤다"고 했다. '공부 안 하는 아이들이 동아리를 핑계로 몰려다니기만 한다'는 편견도 연극반 학생들의 오기를 북돋았다.

하지만 창단 첫해 도(道) 본선 진출을 시작으로 크고 작은 대회에서 입상하기 시작해, 작년 전국청소년연극제에서 대상을 탄 뒤로는 "너무 뻐기는 거 아니냐"는 농담을 들을 정도로 연극반에 대한 시각도 변하고 있다고 한다.
◆"공연 선진국 일본 둘러본 값진 경험"
이기복 교사는 "청소년 연극을 만들 때 가장 힘든 곳이 남자 고등학교"라고 말했다. 남녀 모든 배역을 자연스럽게 소화할 수 있는 남녀 공학과, 여학생이 남자 역할을 맡아도 "그나마 봐 줄 만한" 여자 고등학교와 달리 남자 고교는 배역 구성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비싼 사과의 맛'에 등장하는 간호사와 의대생이 모두 남자이고, 1명으로 줄인 여자 배역은 객석에 있는 여학생 1명을 즉석에서 선택해 무대에 올리는 방식으로 해결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일본 특별공연은 비록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부분만 일본어로 진행해 광주고 연극반의 실력을 완벽하게 선보이진 못했지만, 연극 초년생인 학생들에게는 더 폭넓은 경험을 가질 수 있는 기회였다.
음향을 맡은 최용호(19·서울예대 연극과 진학 예정)군은 "연극 진행과 관련해 극장 스태프들과 정식 회의를 해 본 게 처음이다"라고 했다. 국내에서는 학생들이 아마추어라는 인식 때문에 청소년 연극을 올리는 극장 측이 무대 설치에 소홀하고 학생들이 직접 모든 것을 도맡아 해야 하는 게 대부분이다. 최군은 "퍼블릭 시어터 스태프들이 청소년인 연극반 스태프들과도 진지하게 회의를 하면서 필요한 게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묻고 최상의 무대환경을 위해 배려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이기복 교사는 "학생들이 짧게나마 공연 선진국을 가볼 기회가 됐다"며 "한일 연극협회의 약속에 따라 올 여름에는 일본 청소년연극 대표팀이 방한해 공연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