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신불수 고쳐줬는데 그림 몇점쯤이야"

  • 박국희 기자

입력 : 2010.01.12 05:16

안봉규 화백,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에 3억원 그림 기증
風으로 가족도 못 알아봐 두 달여 치료 끝에 호전 다시 그림 그릴수 있게돼

"병원이 내 목숨을 살려줬는데, 가진 건 그림밖에 없으니까 고마운 마음을 이렇게 전하는 것뿐입니다."

오정(吾亭) 안봉규(72) 화백은 11일 오전 서울 강동구 경희대학교 동서신의학병원에 그림 2점을 기증했다.

병원 로비 벽에 500호(376×176㎝)짜리 연화(蓮畵) 한 점을 건 뒤 안 화백은 "안 고쳐줬으면 편히 쉬었을 텐데 병을 고쳐주는 바람에 앞으로 그림도 더 그리게 되고 피곤할 것 같아요"라고 했다. 그가 어눌한 말투로 농담을 하자 의료진이 박수를 치며 웃었다. 기증한 다른 작품은 40호짜리 목련화 그림이다. 안 화백이 20년 전 그린 이 그림들은 두 점을 합쳐 3억원을 호가하는 대작들이다. 1984년 스웨덴 국립동양박물관에서 초대 개인전을 했던 그의 동양화는 뉴욕시장에서 호당 50만~10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고 한다.

안봉규 화백은“그림은 비싸게 팔라고 있는 게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보여 주라고 있 는 것”이라며“앞으로도 퇴원할 때마다 하나씩 기증할 생각”이라고 했다. /동서신의학병원 제공

안 화백은 여전히 오른쪽 다리가 불편하다. 지팡이에 의지해야 걸을 수 있다. 부인 최봉숙(72)씨는 "1년 전까지만 해도 대소변을 다 받아내야 했다"면서 "가족은 물론 본인도 그때 죽는 줄 알았다"고 했다.

2008년 6월 어느 날 아침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당뇨와 동맥경화 증상이 있었던 안 화백에게 풍(風)이 온 것이었다. 반신불수가 된 그는 가족조차 알아보지 못했다. 의료진은 물론 부인에게조차 '공산당'이라고 외치며 나가라고 하기 일쑤였다.

정형외과와 신경과, 한방내과 의료진이 달라붙어 두 달여 치료에 매달렸다. 안 화백 상태가 호전되기 시작했다. 사람을 알아보고 다리를 제외한 양팔을 쓸 수 있게 됐고 지난해부터 동양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새로 그린 30여점으로 그는 지난해 5월 고향인 충남 아산에서 충무공 탄신 464주년 기념 초대전을 열었다.

안 화백은 자신을 고쳐준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의 김명재(70) 신경내과 교수와 30년 지기(知己)다. 안 화백은 중앙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있던 1975년 낚시 갔다가 유행성출혈열에 걸려 상태가 위독했다. 그때 중앙대학교 병원에서 안 화백을 돌본 이가 바로 김 교수였다. 안 화백은 1995년부터 뉴욕 머시(Mercy)대 동양미술과 교수로 가 있는 10여년 동안 몸이 아프면 바로 귀국해 김 교수를 찾았다. 2001년 만성 췌장염으로 입원해 또 한 번 김 교수 신세를 졌던 화백은 당시 모 그룹 회장이 탐내던 800호(383×254㎝)짜리 목련화를 경희대에 기증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