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9.12.31 02:29
美콩쿠르 1·2위 장하오첸·노부유키·손열음, 음반 전쟁
콩쿠르는 경연장에서만 열리는 것이 아니다. 지난 6월 미국 최고의 피아노 경연대회인 반 클라이번 콩쿠르 참가자들의 연주는 실시간으로 인터넷 생중계됐다. 공연장 안팎에 설치된 12대의 카메라는 연주자의 동선(動線)을 담았고, 섭씨 34도를 넘나드는 텍사스만큼 뜨거웠던 대회 열기도 세계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 대회에서는 중국의 장하오첸(19), 일본의 시각 장애 피아니스트 쓰지 노부유키(20), 한국의 손열음(23) 등 한·중·일의 젊은 연주자들이 나란히 공동 1위와 2위에 입상하면서 '아시아 파워'를 과시했다.
한·중·일의 '피아노 삼국지'가 이번엔 음반으로 재현된다. 공동 1위 입상자인 장하오첸과 노부유키, 2위와 실내악 부문상을 거머쥔 손열음의 대회 연주 실황이 각각 음반(아르모니아 문디)으로 나온 것이다. 이들 연주자의 개성과 장기, 젊음과 열정까지 담아낸 기록들이다.

노부유키는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볼 수 없었지만, 시각 장애인으로는 대회 사상 처음으로 본선 진출한 데 이어 공동 1위까지 입상했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2곡 중에서도 가장 대곡(大曲)에 속하는 〈하머클라비어(Hammerklavier)〉를 택하면서, 자신 앞에 놓여 있는 역경을 피하지 않고 온몸으로 맞부딪친다. 1악장 도입부는 어쩔 수 없이 조금은 어지럽지만, 역경을 딛고서 노래하는 3악장 아다지오는 영롱하게 빛난다.
이번 대회 최연소 참가자였던 중국의 장하오첸은 스트라빈스키와 리스트, 쇼팽의 전주곡까지 곡 선택부터 푸릇푸릇함이 가득하다. 분명 깊이와 묵직함보다는 현란함과 밝기에 치중한 포석이다. 하지만 당장의 완성도만이 아니라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까지 배려하는 것이 콩쿠르의 역할이라면, 장하오첸은 그에 잘 어울릴 정도로 정치(精緻)하면서도 약동하는 젊음으로 가득하다.
한국의 손열음은 고전파의 하이든부터 20세기 미국 작곡가 사무엘 바버의 피아노 소나타와 프랑스 인상파의 드뷔시 전주곡 1권까지 가장 다채롭고도 깊은 폭을 보여준다. 빈틈을 찾기 힘든 적확한 테크닉은 마지막 곡으로 실려 있는 고도프스키의 〈박쥐 주제에 의한 교향적 변용(Symphonic Metamorphosis)〉에서 폭발한다.
시간 분량상 실내악이나 오케스트라 협연이 빠진 것이 조금은 아쉽지만, 내가 만약 심사위원이라면 이 음반을 통해 세 연주자에게 어떤 점수를 줄 것인지 마음속으로 가늠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