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사마' 바리톤 임준식 "악장 간 박수는 죄가 아니다"

  • 허성호 인턴기자

입력 : 2009.12.21 16:08

클래식의 권위주의에 대해 쓴소리하고 있는 '임사마' 임준식 바리톤. /허성호 인턴기자
“악장 간에 박수를 치면 왜 망신을 주죠? 음악가도 관객도 클래식 음악의 권위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공연 중 관객의 행동에 영향을 받아 공연을 못한다면 음악가 스스로 연습을 더 해야 합니다.”

세계 최고의 바리톤 중 하나로 꼽히는 롤란도 파네라이(Rolando Panerai)의 수제자로 이탈리아, 영국, 캐나다, 일본 등에서 10여 년 활동한 성악가 임준식(39)씨. 지난 2년간 MBC라디오 ‘임준식의 클래식 공감’으로 사랑받았던 그는 요새 기존의 격식을 파괴한 소규모 성악 공연으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지난 16일 신촌의 한 카페에서 만난 임씨가 2시간에 걸쳐 클래식 음악의 권위주의에 대해 쓴소리를 쏟아냈다.

◆ 악장 간에 박수치면 ‘이지메’ 당하는 공연장

“관객은 박수를 치고 싶을 때 칠 수 있어야 합니다.” 임씨는 클래식 음악의 권위주의를 상징으로 ‘악장 간 박수 금지’를 꼽았다. 이는 그의 음악 인생도 바꿨다. 2004년 해외 활동을 마치고 그토록 그리던 국내무대에 선 그는 경직된 관객들의 모습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개그와 음악사 소개가 가미된 소규모 공연을 시작했다.

그는 “클래식 공연에서 악장과 악장 사이에 박수를 치지 않게 된 것은 아직 100년이 채 되지 않은 일”이라고 설명했다. 당대의 거장 토스카니니(이탈리아)와 푸르트벵글러(독일)의 권위적이고 신경질적인 성격에서 이 관행이 비롯됐다는 것이다.

특히 성격이 극도로 예민했던 토스카니니는 가수들의 자랑거리였던 관객의 박수나 앙코르는 물론 귀부인들이 모자를 쓰는 것까지 금지시켰다. 임씨는 “원래 정통 이탈리아 오페라는 왁자지껄 음식을 먹으며 보다가 시원찮으면 무대에 토마토를 던지던 것”이라며 “후배 음악가들의 답습으로 침도 못 삼키게 하는 분위기가 생겼다”고 지적했다.

임씨는 반대 사례로 1961년 백악관에서 열린 첼로의 거장 파블로 카잘스의 공연을 들었다. 당시 85세의 카잘스는 대통령 존 F.케네디와 가족들 앞에서 첼로를 연주했는데 당시 녹음파일을 들어보면 악장 간 박수가 연달아 나온다. 임씨는 “케네디가(家)가 무식쟁이들이냐”고 반문했다. “케네디의 아버지는 영국대사를 지냈던 인물이죠. 미국 최고 명문가에서 자란 그들은 어려서부터 생음악을 듣고 자랐습니다. 악장 간 박수는 음악적 소양이 대단히 높았던 그들이니 할 수 있었던 일이죠.”

관객과의 벽을 허무는 소규모 공연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임준식 바리톤. /허성호 인턴기자
◆ 클래식 음악의 권위주의는 자승자박

고상해보이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지루하고 어려운 클래식 음악. 임씨는 현재의 클래식 공연을 “일반인이 즐기지 못하는 소도(蘇塗)나 에덴동산”에 비유하며 “권위주의, 신비주의로 클래식 음악의 가치가 올라간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라고 비판했다.

지난해 공연을 위해 내한했던 한 이탈리아 음악가는 한국을 떠나며 임씨에게 “전 세계에 공연을 다녔지만 클래식 공연에 이토록 젊은 사람들이 많은 것은 처음”이라며 놀라움을 표했다. 그때 임씨는 그저 웃었다.

그는 “절대다수의 클래식 공연이 공연자가 자비를 들이고 대관해 지인들을 초대하는 형태”라며 “그게 아니라면 젊은 관객들은 대개 아버지가 기업에서 받은 초대권을 내고 들어온 ‘공짜 관객’일 가능성이 높다”고 꼬집었다. 아직까지 대부분의 클래식 공연은 대중에게 ‘가뜩이나 비싼데 제 돈을 내며 관람할 필요까지는 없는’ 문화생활이라는 것.

권위주의 타파에 목청을 높이는 임씨의 목표는 관객과의 교감 뿐 아니라 대다수 클래식 음악인들의 열악한 현실 타개에도 있다. 어려서부터 레슨, 유학으로 막대한 노력을 투자한 음악인들이지만 공연장 대관, 음악 수요, 경제적 측면 등 여러 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문제의 발단은 클래식 음악이 국내 대중정서와 함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임씨의 입장이다.

“상류사회에 편입한 듯한 카타르시스를 즐기기 위해 공연에 오는 관객이 의외로 많다”는 임씨는 “본고장인 이탈리아에서 오페라는 청바지를 입고 와서 편하게 즐기는 오락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탈리아에는 청소부도 잘 생겼대’라고 말하고 그들은 ‘동양여자가 그렇게 헌신적이라며?’라고 말하죠. 한국, 미국인들이 오페라를 ‘귀족놀음’으로 대하는 태도 역시 마찬가지 경우입니다. 서로의 문화를 몰라서 비롯된 일종의 환상이죠.”

◆ 관객반응 배제한 클래식은 민족성에 역행

임씨는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 방안으로 한국 전통음악의 ‘추임새’에 주목한다. 그는 “추임새야말로 연주자와 관객의 심오한 대화”라며 “관객의 반응을 일체 배제한 지금의 형태는 ‘쌍방향’으로 흥을 즐기던 우리 민족성을 역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공연을 진행하는 내내 의식적으로 관객들의 대화와 반응을 유도한다.

그는 “클래식 음악의 범주도 계속 바뀌고 있다”며 수백 년 된 음악에 너무 집착하지 말 것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아르헨티나의 작곡가 아스트로 피아졸라의 1974년작 ‘리베르탱고’를 예로 들었다. 리베르탱고는 원래 클래식의 범주에 들지 못했지만 지금은 클래식 프로그램이나 연주회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곡이 됐다는 것. 덧붙여 음악가의 정치성과 종교성의 표출도 관객의 즐거운 감성을 끌어내기 어려운 관행이라고 비판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나면서 “무엇을 믿기에 그토록 당당하냐”고 묻자 임씨는 미소를 머금으며 답했다. “제 뒤에는 권위주의자가 가지지 못한 든든한 팬들이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