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9.12.17 03:15
우리가 한국의 '빌리 엘리어트'
'뮤지컬 주인공' 최종후보 8명 남아 내년 2월 오디션 앞두고 막판 구슬땀
발레·연기·탭… 저마다 장기 하나씩 "빌리처럼 춤에 미쳐… 꼭 꿈 이룰래요"
지난 11일 오후 서울 삼성동의 한 스튜디오. 문을 열자 피루에트(한 다리로 서서 팽이처럼 도는 발레 동작)를 연습하는 소년들 뒤로 벽을 가득 메운 낙서가 보였다. 지난 10개월간 이 '빌리 스쿨'에서 몸을 만들며 생긴 투지와 굳은살, 너스레와 외로움의 흔적이다.
김세민(12)·김세용(12)·박준형(10)·변세종(10)·이상민(12)·이지명(12)·임선우(10)·정진호(11). 내년 8월 LG아트센터에서 개막하는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Billy Elliot)》 한국 초연에서 빌리 최종 후보(2배수)로 압축된 8명의 머리칼은 땀에 젖어 있었다. 화요일 필라테스·발레, 수요일 현대무용·발레·연기, 목요일 발레·탭·보컬, 금요일 발레·힙합·탭, 토요일 탭·애크러배틱, 일요일 발레·연기로 이어지는 시간표는 숨이 가빴다. 일주일에 월요일만 쉬는 강행군이다.
1980년대 영국을 무대로 펼쳐지는 《빌리 엘리어트》는 발레 무용수의 꿈을 이루는 탄광촌 소년 빌리가 주인공이다. 영화(2000년)에 이어 2005년 3월 런던에서 뮤지컬로 히트한 대작이다. 지난해엔 미국 브로드웨이에 진출, 2009 토니상에서 최우수 뮤지컬상 등 10개의 트로피를 쓸어담았다. 한국 초연도 '10~12세, 키 150㎝ 이하의 변성기가 지나지 않은 소년'이라는 빌리 응모 자격부터 화제가 됐다.
"그러면 뭔가가 타오르는 느낌이/ 내 몸 깊은 곳으로부터 터져 나오고/ 난 갑자기 하늘을 날기 시작해/ 전율이 흐르는 짜릿한 느낌/ 퍼지면서 난 자유를 찾죠~." 연습실에서 빌리 후보 8명이 부르는 대표곡 〈일렉트리서티(electricity)〉(작곡 엘튼 존)는 파동처럼 공중으로 번졌다. 뮤지컬 속 빌리는 영국 로열발레단 오디션장에서 "춤출 때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에 이 노래로 답한다. 그리고 노래는 발레가 된다. 빌리 후보들의 탭은 자신을 다독이는 위로와 격려 같았다.
김세민은 머리를 땋은 '꽁지 머리'라 언뜻 보면 소녀 같다. 피아노 연주와 재즈댄스에 재능이 있다. 발레가 미숙하지만 연기와 노래에 감정을 뭉칠 줄 안다. 김세용은 한국 발레의 기대주다. 2009 유스아메리카그랑프리에서 발레 부문 1위를 차지했다. 호흡이 좋고 섬세하다. 탭 등 다른 춤과의 균형감을 찾으려 노력 중이다.
박준형은 1차 오디션 1번 지원자였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를 보고 발레에 빠졌다. 동작이 잘 안 되면 반복 연습해 완성하는 그는 "빌리처럼 꿈을 이루고 싶다"고 했다. 대구 오디션에서 선발된 변세종은 피겨스케이팅 선수 출신이다. 동계체전 등 여러 대회에서 1~2위를 수상했다. 근력이 부족하지만 유연성이 좋고 열정적이다.
이상민은 빌리의 친구 마이클로 합격했지만 체중을 8㎏이나 줄이고 빌리에 도전했다. 뮤지컬 《라이언 킹》의 심바, 발레 《호두까기 인형》의 프리츠를 거쳤다. 발레콩쿠르 수상 경력도 있다. 이지명은 연기력에 강점이 있다. 뮤지컬 《라이언 킹》의 심바, 《명성황후》의 세자였다. 방에 이불을 깔아놓고 발레를, 인천의 집에서 빌리 스쿨을 오가며 탭을 연습하는 의욕파다.
임선우는 후보 중 막내로, 귀여운 외모지만 연습할 땐 카리스마가 있다. 발레콩쿠르에서 여러 번 입상했다. 애크러배틱과 표현력을 집중 훈련하고 있다. 장래 희망은 발레리노. 정진호는 '탭 신동'으로 TV에 여러 번 출연했다. 《빌리 엘리어트》 제작사 매지스텔라에서 수소문해 빌리 후보로 뽑혔다. 유연성이 부족하지만 목소리와 집중력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