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한나 칼럼]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1시간

  • 장한나 첼리스트

입력 : 2009.11.20 23:04 | 수정 : 2009.11.23 15:17

장한나 첼리스트

지난 17일 명(名)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 선생님이 입국하기 무섭게, 그가 묵고 있는 숙소로 달려가 인사를 드렸다. 그는 내가 10세 때 첫 레슨을 받았던 선생님이시다. 마이스키 선생님은 비행기에서 갓 내려 여독이 풀리지 않았지만, 반갑게 맞아주시며 아이들 사진부터 보여주셨다.

네 아이의 아버지인 그는 "예순 가까이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은 바로 아빠가 된 것"이라며 활짝 웃으셨다. 선생님과 나는 이달 한국에서 각자 리사이틀과 협연을 갖고 있다. 바쁜 리허설과 연주 일정 속에서도 선생님께선 밤늦도록 음악과 삶에 대해 두런두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으셨다. 내 12번째 생일부터 매년 한 번도 빼놓지 않고 축하를 해주시는 선생님은 음악계에서 '아버지'와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11월 나는 한국에서 브람스의 첼로 소나타를 연주하며 전국 순회 독주회를 갖고 있다. 10세 때 마이스키 선생님께 첫 레슨을 받을 때 내가 연주해 보았던 곡이 바로 브람스의 첼로 소나타이기도 하다. 브람스를 떠올리거나 연주할 때마다, 마음속에서는 자연스럽게 선생님과의 첫 만남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처음 가보았던 이탈리아의 시에나는 참 재미있는 곳이었다. 당시 부모님과 나는 시에나의 유명한 광장 뒷골목의 가리발디 호텔에 짐을 풀었다. 19세기 이탈리아 통일운동에 헌신한 가리발디 장군의 이름을 땄지만, 노부부가 운영하는 이 호텔은 차라리 여관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았다.

1~2층에는 아주머니가 직접 운영하는 식당이, 3~6층에는 객실이 있었는데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매일 열심히 오르락내리락했다. 호텔 방에서 창문을 열고 연습을 하면, 거리를 지나가던 사람들이 박수를 쳐주던 기억도 생생하다. 지금은 그렇게 즐기고 좋아하는 파스타도 당시엔 입이 짧아서 제대로 한번 먹지도 못했다.

시에나의 카지아나 음악원은 호텔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었다. 로마 시대에 만든 돌길 위로 비탈진 언덕을 따라서 걸어 올라가면서, 2~3층 높이의 대문을 보며 놀라곤 했다. 유럽에서 손꼽히는 명문인 카지아나 음악원의 대리석 계단은 오랜 세월 동안 지나간 많은 사람들의 발자취로 푹 파여 모두 닳아 있었다.

마이스키 선생님의 방에도 오래된 유화가 벽 전체에 가득 걸려 있었다. 선생님은 10세 때 내가 연주한 비디오 영상을 보시고 시에나에 초청해 주셨다. 당시 첫 레슨에서 연주한 곡이 브람스의 첼로 소나타 1번이었다.

내 브람스 연주를 들은 뒤, 선생님께서는 작곡가와 악보의 관계에 대해 상세하게 말씀하시기 시작했다. "연주자에게 작곡가는 하늘에 있는 신과도 같은 존재여야 한다. 따라서 작곡가의 뜻이 명기되어 있는 악보는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이다. 왜 이렇게 작곡했을까? 왜 다른 음이 아닌 이 음을 썼을까? 무엇을 표현하고 싶어서 이 소절은 이렇게 썼을까? 이런 음악을 작곡한 브람스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지금 내가 내는 이 소리를 브람스는 맘에 들어 할까?"

모두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 선생님은 처음으로 내게 '해석'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었다. 선생님은 작품에서 이 부분은 이렇게 연주해야 하고, 저 대목에서는 이런 생각을 해야 한다고 시시콜콜히 일러주지 않았다. 오히려 나 스스로 여러 생각을 해보아야 한다는 깨우침을 줬다. 때로는 넘어지고 다치더라도, 스스로 생각하고 고민하며 연주하는 습관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걸 그때 처음으로 느꼈다. 첼리스트로서, 아니 어쩌면 음악가로서도 걸음마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내 삶의 가장 소중한 1시간을 꼽으라고 할 때마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마이스키 선생님과의 첫 만남'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