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ABC] 무턱대고 아이와 음악회 가는 건 물에도 못뜨는데 수영장 가는 격

  • 김성현 기자

입력 : 2009.11.19 03:02

최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국내 중견 여성 피아니스트의 독주회가 열렸습니다. 바흐와 모차르트, 버르토크로 의욕 넘치는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공연장의 열기도 점차 뜨거워집니다. 이때 흰색 점퍼를 예쁘게 차려입은 어린 여학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객석을 왔다 갔다 합니다. 주변 관객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리자, 부모도 난처한 표정입니다. 객석 안내원이 다가와서 주의를 줬지만, 자리에 털썩 앉은 이 여학생은 인형을 꺼내 들고 놀더니, 2부에서는 급기야 쓰러져 잠이 듭니다.

침묵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클래식 음악회에서 종종 마주치는 풍경입니다. 미취학 아동의 입장을 대개 금지하고 있는 공연장에서는 어린이 관객의 출입 허용을 놓고 안내원과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합니다. 안내원은 학교와 반, 담임선생님 이름까지 꼼꼼히 물어보지만, 답변을 미리 준비해오면 막을 도리는 없습니다.

어려서부터 음악회에 데리고 가는 건, 꿈을 심어주고 감수성을 키울 수 있어 유익합니다. 지휘자 아담 피셔는 5세 때 연주회에서 하이든의 교향곡을 듣고서 지휘의 꿈을 키웠고, 베를린 필의 지휘자 사이먼 래틀은 9세 때 반바지 차림으로 아버지의 손을 잡고 객석 맨 앞줄에서 말러 교향곡 8번을 들었다고 하지요. 하지만 충분한 사전 적응 없이 곧바로 아이를 음악회에 데리고 가는 건, 제대로 강습을 받지 않은 채 수영장이나 바다에 데리고 가는 것만큼 위험합니다.

우리 아이는 언제쯤 음악회에 가면 좋을까요. 마음에 드는 장르나 악기, 작곡가가 생길 때까지 소품이나 명곡집 음반으로 천천히 귀를 푸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 뒤 어린이와 청소년 해설 음악회를 통해 공연장 분위기를 직접 느끼고 체험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해설과 율동을 곁들인 음악회는 마치 자전거의 보조 바퀴와 같은, 일종의 안전장치입니다.

이런 순서를 충실히 거쳤다면, 하이든이나 모차르트의 관현악 전(全) 악장이나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 등 상대적으로 길이가 짧은 작품 전체를 통째로 들어보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서곡과 협주곡, 교향곡을 2시간 가까이 들려주는 일반 연주회는 어른 관객이 앉아 있기에도 많은 인내심이 필요한 것이 사실입니다. 음반을 통해 교향곡과 협주곡 전체를 어려움 없이 들을 정도가 됐을 때, 아이를 '정식' 콘서트에 데리고 가는 것이 '정석'입니다.

아이가 책을 읽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부모가 먼저 독서하는 것이듯이, 아이의 감수성 계발을 위해서는 부모가 먼저 일상적으로 음악을 벗 삼아야 합니다. 대중음악이 또래 집단 사이에서 수평적으로 전파되는 속성이 강한 반면, 고전음악은 대를 이어 수직적으로 계승되는 성격이 분명 있지요. 갑자기 생긴 티켓 때문에 무턱대고 아이 손을 붙잡고 공연장에 가는 것은, 자칫 아이에게 그릇된 첫인상을 평생 남길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