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9.11.19 02:59
'토니상' 트로피만 5개…
브로드웨이 최고 안무가 수잔 스트로만
"춤이 주인공인 뮤지컬…
소품 활용한 파격 안무…없는 걸 창조하는게 내 일"

사무실에 들어서는 순간 흰색에 압도당했다. 17일 밤(현지 시각) 미국 뉴욕의 맨해튼 57번가. 브로드웨이의 최고 안무가 수잔 스트로만(Stroman·55)은 책상과 소파는 물론 벽까지 온통 하얀 사무실에서 악수를 청해왔다. 뮤지컬 《프로듀서스》 《크레이지 포 유》에 이어 내년 1월 《컨택트(Contact)》로 한국 관객과 다시 만나는 그는 "흰색은 머리를 맑게 해준다"며 웃었다.
5개의 토니상을 차지한 스트로만은 브로드웨이의 블루칩이다. 안무와 연출을 겸하면서 "감각적인 안무로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평을 받는다. 토니상 트로피를 구경하고 싶다고 하자 스트로만은 "집에 뒀다. 토니상은 받을 때 행복하고, 빨리 잊을수록 더 행복해진다"고 했다. "과거엔 없었던 '새로운 무엇(something new)'을 창조해야 하는 게 내 직업"이라는 것이다.
그는 다섯 살부터 발레와 재즈를 배웠다. "피아니스트였던 아버지 앞에서 춤을 추면서 자연스럽게 안무 감각을 터득한 것 같다"고 했다. 스트로만은 《크레이지 포 유》에서 소품을 활용해 등장인물의 성격을 드러냈고, 《프로듀서스》에서도 서랍장에서 튀어나오는 미녀들의 춤과 할머니들의 '보행기 춤'으로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또 《컨택트》는 '노래가 없는데 뮤지컬인가?'라는 논란을 이겨낸 작품이다.
"뮤지컬은 춤, 노래, 플롯(이야기)으로 구성돼 있잖아요. 《레 미제라블》에는 춤이 없고, 《스모키 조스 카페》에는 플롯이 없지요. 《컨택트》처럼 노래 없이 춤이 주인공이 되는 뮤지컬도 있을 수 있습니다."

'접촉'에 관한 세 에피소드를 이어붙인 《컨택트》는 실화에 뿌리를 둔 작품이다. 스트로만은 1998년 맨해튼의 한 바에서 노란 원피스를 입은 관능적인 여인을 만났다. 새벽이 되면 테이블을 밀어놓고 춤을 추는 곳이었다. 스트로만은 "검은 옷을 주로 입는 뉴욕 사람들과 달리 그녀는 누군가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상징으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컨택트》가 초연되자마자 남편을 암(癌)으로 잃은 그는 "이 뮤지컬의 주제는 외로움"이라고 했다.
스트로만은 《영 프랑켄슈타인》이 흥행에 실패하는 등 최근 들어 부진했다. 그러나 "전성기가 지났다" "자기복제로 간다"는 평가에는 정색했다. 그는 "테러나 금융위기 등 사회적인 환경 때문이지 예술적으로는 자신이 있다"며 "관객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느 순간 울고 언제 지루해하는지 늘 관찰하고 있다"고 했다.
스트로만은 '극장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컨택트》를 본 한 여성 관객은 그에게 "이제 남편을 떠날 수 있게 됐다"고 고백했다고 한다. 스트로만은 "뮤지컬보다 그녀의 삶이 더 해피엔딩 아니냐"고 물었다. 그런데 왜 그토록 코미디만 할까. 금발의 그녀는 "삶에는 비극이 너무 많으니까"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