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9.11.16 03:13
정명훈 서울시향, 13일 예술의전당 연주회
13일 서울시향 무대는 프랑스 출신의 피아니스트 세드릭 티베르기앵과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17번을 협연하며 막이 올랐다. 기름지지 않고 산뜻하면서도 날렵하게 접근하는 모차르트는 지휘자 정명훈의 숨은 장기 가운데 하나다. 소편성인 탓에 음량이 작아 객석 뒤편까지 고루 소리가 전달되지 못한 점은 다소 아쉬웠지만, 자칫 단조롭기 쉬운 모차르트의 협주곡에 서정성과 위트까지 다채로운 표정을 불어넣은 독주자의 아이디어가 빛났다. 마치 프랑스 음악처럼 음색(音色)에서 출발하는 모차르트는 미식가 앞에 놓인 성찬(盛饌)만큼 화려했다.

정명훈은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과 말러(Mahler) 교향곡 전곡(全曲) 시리즈를 진행해서 절찬을 받고, 프랑스 언론에도 "나는 말러를 연주하기 위해 지휘자가 됐다"고 고백할 만큼 탁월한 '말러 전문가'로 꼽힌다. 반면 동시대 교향악의 거장으로 꼽히는 브루크너(Bruckner)는 지휘자나 악단에 모두 상대적으로 공백으로 남아있었다.
올해 브루크너의 후기 교향곡을 차례로 연주해온 서울시향은 이번에는 작곡가가 '신(神)에게 헌정한다'고 밝힐 만큼 애착을 기울였지만, 끝내 미완성으로 남고 말았던 교향곡 9번을 골랐다. 단거리와 장거리 주법(走法)에 차이가 있는 것처럼, 지휘자와 악단은 3악장 60여분에 이르는 대곡(大曲)을 결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풀어나갔다. 1악장부터 곡이 지닌 감정적 굴곡을 한껏 강조하고 뜨거운 열정을 불어넣었지만, 강철같이 견고한 앙상블이 필수적인 2악장에서는 표정 변화가 지나치게 잦았다. 자칫 무의미할 수 있는 트레몰로(tremolo)와 지루해 보일 수 있는 무한반복을 통과해야 브루크너라는 험준한 준령에 도달할 수 있다. 이날 연주는 소박하면서도 덤덤하게 지고지순(至高至順)한 종교적 심성까지 펼쳐보이는 브루크너보다는 오히려 화려하고 복잡한 말러처럼 들렸다.
서울시향은 이번에 필사적인 반복 연습을 통해서만 접근 가능했던 후기낭만파의 대곡을 일상적으로 소화해낸다는 점에서는 분명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베토벤과 브람스를 통해 기반을 탄탄히 다지고, 현대음악 시리즈를 통해 레퍼토리를 급속하게 확장시켰던 서울시향의 향후 과제가 어디 있는지 보여주는 자리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