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9.11.12 03:10
기돈 크레머·주형기·이구데스만 합동 공연
클래식 음악을 유쾌·상쾌·통쾌하게 패러디하는 콤비로 유명한 주형기(피아노)와 알렉세이 이구데스만(바이올린)이 정상급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Gidon Kremer)와 만났다. 10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이들의 합동 공연은 평소 자구(字句) 하나 건들기 힘들 정도로 엄숙한 클래식 음악을 한껏 비틀고 꼬집으며, 경쾌한 '음악적 난장(亂場)'을 펼쳤다.

"내 이름은 크레머. 누군가 클래식 음악을 죽이려 한다"며 영화 《007시리즈》의 첩보원 제임스 본드를 눙치듯 패러디한 크레머의 공연은 '음악에 대한 농담'인 동시에 '음악적 유희'이기도 했다. 구노의 경건한 '아베 마리아'는 마디 하나를 살짝 비틀자 농염한 탱고로 변했고, 이구데스만은 바이올린으로 탱고를 연주하는 동시에 발끝으로 춤추는 진기 명기를 선보였다. 크레머가 홀로 연주할 때 단원들이 무대로 천천히 걸어나와 호흡을 맞추며, 꿈과 현실이 점차 뒤엉키는 것을 묘사한 대목처럼 매혹적인 장면도 수두룩했다.
'기돈 크레머 되기'라는 공연 제목처럼, 클래식 음악에 대한 패러디는 동시에 크레머 자신을 향한 질문이기도 했다. 명연주자를 꿈꾸며 콩쿠르를 준비하는 크레머에게 "독주자가 되려면 남들보다 10배는 더 나아야 해"라고 채근하고, 음반을 녹음 중인 크레머에게 프로듀서는 더 빠르게 연주하거나 옛 스타일로 돌아가야 한다고 잔소리를 퍼부었다.
이날 공연은 갈수록 상업화·획일화·대중화되고 있는 클래식 음악에 대한 자성의 의미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두 시간 남짓의 무대에서 모두 풀어내기엔 지나치게 많은 질문을 한꺼번에 쏟아내기도 했다. "예술가는 몽상가로 남아야 한다"거나 "성공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저항해야 한다"는 크레머의 말은 영화배우 찰리 채플린을 다분히 염두에 둔 듯했지만, 이구데스만과 주형기의 비주류적이고 급진적인 감수성과 미묘한 균열을 보이기도 했다. 유쾌하면서도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시도 자체는 의미 있었지만, 자칫 공허한 감상에 그칠 위험도 다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