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관객들 다 모여라

  • 박돈규 기자

입력 : 2009.11.09 02:48

비빔밥 만드는 퍼포먼스 '비밥 코리아' 연출 최철기
공연장을 식당처럼… 무대에서 직접 조리

《비밥 코리아》에서 비트박스를 재발견했다는 최철기는“사람 입으로 내는 소 리가 화음이 될 때 뜻밖의 감동과 흥분을 경험하게 된다”고 했다./이덕훈 기자 leedh@chosun.com
비언어극(非言語劇) 《점프》 《난타》의 연출을 맡았던 최철기(36)는 지난여름부터 비빔밥깨나 먹었다. 비빔밥을 소재로 한 퍼포먼스 《비밥 코리아(Bibap Korea)》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6일 서울 광화문의 식당에서 만난 그는 낙지비빔밥을 주문했다. 한 그릇을 비운 연출가는 "재료만 좋으면 비빔밥 맛은 거기서 거기"라며 웃었다.

역시 비언어극인 《비밥 코리아》에서 가장 결정적인 재료는 비트박스다. 야채 써는 소리, 볶는 소리, 쌀 씻는 소리를 모두 배우들이 입으로 낸다. 최철기는 "요리사들이 요리 소리에 조금씩 중독되고 몸이 리듬을 타면서 비빔밥을 완성하는 코미디"라고 말했다.

이 '비빔밥 공연'은 농림수산식품부와 한식세계화추진단이 추진한 프로젝트다. 최철기가 연출을 제안받은 건 지난 6월. 정상회담이나 영화제 같은 국제무대에서 한국 브랜드를 알릴 30분짜리 공연물로 출발했지만, 80분 이상의 극장 버전도 논의 중이다.

"공연장은 관객이 로비에서부터 식당 느낌을 받았으면 해요. 객석 안내할 때도 '1번 테이블 네 분 들어가십니다' 하고, 나올 때는 껌이나 박하사탕을 나눠주고. 관객이 시식하는 장면도 들어갑니다."

《비밥 코리아》의 레시피(recipe· 요리법)는 비빔밥을 닮아 있다. 칼의 달인, 볶음의 달인, 무침의 달인 등이 100인분의 비빔밥을 만드는 이야기에 비트박스와 아카펠라, 비보이 댄스, 아크로바틱 등을 뒤섞는다. 최철기는 "믹스 앤 하모니(mix and harmony)를 추구한다"며 "내용뿐 아니라 형식도 '비빔밥'"이라고 했다.

무대는 버섯·취나물 등 신선한 재료를 구하는 영상으로 열린다. 달인이 등장해 "100인분!" 하면 요리사들이 '꺅' 놀라고 파트별로 분주하게 일을 시작한다. 고추장과 참기름으로 비빔밥을 마무리할 때까지 무대에서 직접 조리하기 때문에 후각도 자극하는 공연이다.

제작진과 출연진이 화려하다. 《점프》의 '도둑' 김철무가 코미디 연출을, 《점프》 《난타》를 모두 거친 홍상진이 안무를 각각 맡는다. 《점프》의 윤정열도 칼의 달인으로 출연한다.

《비밥 코리아》는 내년 상반기 초연될 예정이며 해외진출도 노리고 있다. 최철기는 "《점프》는 유럽과 미국에서 반응이 사뭇 달랐다"며 이를 음식 문화의 차이와 관련지었다. 여유롭게 요리를 즐기는 유럽과 달리 패스트푸드의 천국인 미국은 '더 빠른 장면전환, 더 자극적인 코미디'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는 비언어극은 배우의 역량과 시간이 중요하다고 했다. 《점프》가 살아 있는 예다. "배우의 연기가 숙성될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재료가 좋다면 초연 이후에도 그 팀이 2~3년 계속 다듬어야 완성도 있는 작품이 나와요. 최근 실패한 비보이 공연들은 짧은 호흡과 조급증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