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금호아트홀 '슈베르트 시리즈' 첫 무대

  • 김성현 기자

입력 : 2009.11.09 02:45

슈베르트곡에 대한 이지적 접근

슈베르트(Schubert·1797~1828)는 서른 하나에 죽었다. 나이 드는 것의 서러움을 알 리 없는 나이였지만 생의 뒷부분으로 갈수록 그의 곡에는 죽음과 절망, 비탄의 정서가 짙게 배어 있다. 타계 180여년이 흘렀어도 여전히 그가 우리를 사로잡는 이유다.

서울 종로구 신문로에 있는 390여석 소극장 금호아트홀이 11월 한 달간 매주 목요일 네 차례에 걸쳐 '슈베르트 집중 탐구'에 들어갔다. 첫 손님으로 지난 5일 무대에 올라온 독일 출신의 피아니스트 세버린 폰 에커슈타인(Severin von Eckardstein)은 공교롭게 슈베르트가 세상을 떠난 나이와 같은 31세다. 2003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1위 수상자로 친숙한 그가 동년배 작곡가를 그려내는 초상은 어떤 것일까.

5일 금호아트홀의‘슈베르트 시리즈’첫 무대에 선 독일 피아니스트 세버린 폰 에커 슈타인이 슈베르트의 피아노곡을 연주하고 있다. 이 시리즈는 11월 한 달 매주 목요 일 열린다./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제공
첫 곡은 미완성으로 남은 슈베르트의 '유적'에 빛을 다시 비추는 재조명으로 시작됐다. 슈베르트가 2악장만을 남긴 채 3~4악장을 완성시키지 못하고 타계한 피아노 소나타 D.840의 두 악장으로 문을 연 것이다. 까다롭고 독특한 박자감으로 자칫 흐름을 놓치기 쉬운 작품에서도 31세의 피아니스트는 진지함을 잃지 않았다.

슈베르트가 그토록 흠모했던 베토벤이 갈등의 끝없는 증폭과 이완을 통해 강고한 건축물을 구축한다면 슈베르트는 기악곡에서조차 천성적으로 노래한다. 덕분에 음악사는 무거운 고전주의의 옷을 벗고 부드러운 낭만주의에 들어설 수 있었다.

즉흥곡 D.899의 2·4번과 소나타 D.959에서 연주자는 적극적으로 페달을 사용하거나 단락과 단락을 과감하게 분해한 뒤 재조립하면서 감각적이고 즉물적으로 그려나갔다. 슈베트르 특유의 소박한 서정성이 다소 씻겨나간 듯해 아쉬웠지만, 독창적이면서도 이지적인 접근 덕분에 슈베르트가 라벨이나 프로코피예프처럼 들리기도 했다. 슈베르트가 17세 때 쓴 가곡 〈물레 잣는 그레첸〉이나 왈츠 〈비엔나의 밤〉의 피아노 편곡에선 연주자의 열 손가락이 건반 위에서 화려하게 춤추며 빛을 뿜었다.

금호아트홀의 슈베르트 시리즈는 12일 부부 피아니스트 클라우스 헬뷔히와 이미주의 '네 손을 위한 피아노 작품' 연주회, 19일 베를린 트리오의 피아노 3중주, 26일 바리톤 정록기와 피아니스트 이미주가 들려주는 연가곡 《겨울 나그네》로 이어진다. (02)6303-7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