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발레로의 도약… 국립 발레단 '왕자 호동'

  • 성남문화재단
  • 글=유형종(무용 칼럼니스트)
  • 사진제공=국립발레단

입력 : 2009.11.05 14:07

국립발레단 '왕자 호동'
최태지 예술감독의 재부임 이후 국립 발레단이 선택한 첫 창작발레는 '왕자 호동'이다. 일단 무척 매력적인 제재다. 삼국 시대의 역사적 내용을 다룬다는 점이 그러하고, 자명고(自鳴鼓)라는 전설적인 상징물이 등장한다는 점 역시 그렇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마음에 드는 것은 비극이란 점이다.

'심청'이나 '춘향'같은 가장 널리 채용되는 전통 민담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바람에 여운이 길게 가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었다. 이번 공연은 ‘국가대표 프로젝트’라는 기치 아래 세계로 향하는 창작품을 만든다는 것에 있지만, 비극이라고 해서 외국인에게 비치는 한국 문화에 누가 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리스 연극도, 셰익스피어의 경우도 그 본질은 온통 비극이지 않은가?

한 가지 더 인상적인 점은 '왕자 호동'이야말로 국립 발레의 뿌리와 맞닿아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발레의 개척자이자 국립 발레단 초대 예술감독을 역임한 故 임성남이 88서울 올림픽을 기념하여 만든 본격적인 전막 발레가 바로 '왕자 호동'이었다. 당시 최태지 현 예술감독이 낙랑 공주를, 문병남 현 부예술감독이 호동 왕자를 추었지만, 그보다 앞서 초연된 유니버설발레단의 '심청'이 꾸준한 보완 작업을 거쳐 한국 창작 발레를 대표해 온 것과 달리 '왕자 호동'은 사라져 버렸다. 그 끊어진 맥을 다시 잇는 기회가 온 것이다.

국립발레단 '왕자 호동'
볼거리가 무척 많은 작품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우리나라 전통무용계의 대가 국수호가 쓴 대본은 고구려 병사들의 힘찬 군무와 두 주인공의 사랑, 호동의 계모 원비와 낙랑의 필대 장군에 의해 비롯되는 갈등과 음모, 결혼 축하연의 디베르티스망, 자명고의 파괴 등을 거대하면서도 짜임새 있게 다루었다. 안무를 맡은 문병남은 한국 춤의 요소를 억지로 발레에 끼워 넣는 것에 집착하지 않고 ‘인간주의’에 의해 역사적 인물들의 내면을 폭발시키는 것에 초점을 맞추겠노라고 다짐하고 있다.

필자로서는 두 주인공의 죽음을 지독하고 무거운 슬픈 분위기로 끌고 갈 지 아니면 아름다운 승화로 가져갈 지가 가장 궁금한데, 개인적으로는 전자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세계적 거장 제롬 카플랑이 디자인을 맡은 고구려 시대의 전통 의상, 신선희의 무대장치도 기대된다. 조석연이 새로 작곡한 음악 또한 성패를 가를 중요한 요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전통과 혁신, 우리 것과 서양의 것을 잘 조화시킨 곡을 만드는 것이 결코 녹녹치 않은 작업이기 때문이다. 음악이 갖는 현대성을 보완하고자 문병남은 장르를 넘나드는 작업에 능한 젊은 여류안무가 차진엽을 합류시켰다.

세 팀이 주역으로 나설 예정이다. 김현웅(호동)과 김주원(낙랑 공주)은 국립 발레의 공인된 주역팀이고, 네덜란드 국립 발레단의 주역에서 국내로 돌아온 김지영(낙랑 공주)은 단숨에 스타로 자리 잡은 이동훈(호동)과 커플을 이룬다. 2년 전 로잔 콩쿠르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고 아메리칸발레시어터에서 훈련을 쌓았던 박세은(낙랑 공주)도 입단 후 첫 주역을 맡는다. 상대는 대형 발레리노로 성장하고 있는 이영철(호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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