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 제문… 자녀 균등상속 담은 분재기(分財記)…

  • 이한수 기자

입력 : 2009.11.02 03:11

한국 국학진흥원안동권씨 문중 기탁 유물전시

"아, 원통하고 슬프다! 내가 너와 인간 세상에서 부자(父子)라는 이름으로 정해진 것이 겨우 33년인데 부자의 정을 나눈 것은 그 3분의 1이나 되었겠는가. 네가 과연 죽었느냐. 죽었다면 병으로 죽었느냐. 병은 함부로 사람을 죽이지 못할 것이니, 충직(忠直) 때문에 죽었느냐. 사람의 삶은 올바름에 있는 것이니 네가 만약 죽을 자리에서 죽었다면 어찌하겠는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고려공산청년회 제2대 책임비서였던 권오설(權五卨·1897~1930)이 일제의 고문으로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獄死)한 직후 그의 아버지 권술조(權述朝)는 직접 지은 아들의 제문(祭文)에서 애통한 심정으로 울부짖었다. 단아한 해서(楷書)체 한문으로 쓴 이 제문은 길이가 어른 키 두 배가 넘는 365㎝에 이른다.

독립운동가 권오설이 옥사한 직후 아버지 권술조가 직접 짓고 쓴 제문./한국국학진흥원 제공
경북 안동에 자리한 한국국학진흥원(원장 김병일) 한국유교문화박물관은 3일부터 내년 1월 5일까지 '안동 권씨 가일문중 특별전'을 개최한다. 조선 초기 자녀균등상속 관행을 담고 있는 '분재기(分財記)', 성균관 같은 방에서 공부한 동료들의 모임을 기록한 '동방록(同房錄)', 은니(銀泥)를 입힌 퇴계 이황의 성학십도(聖學十圖) 병풍 등 보물 14점과 '옥중 서신' '옥사 전보' 등 권오설 관련 유물 등 70여 점의 희귀 자료들이 전시된다. 안동 권씨 가일문중이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한 7000여 점 중에서 엄선한 것들이다.

은니를 입힌 퇴계 이황의 성학십도 병풍./한국국학진흥원 제공
안동 권씨 가일문중은 안동 가일 마을에서 600년간 세거(世居)하고 있는 명문가로 하회의 풍산 류씨, 우렁골의 예안 이씨, 오미의 풍산 김씨와 더불어 안동 서부지역 4대 가문 중 하나로 꼽힌다. 조선 연산군대의 권주(權柱·1457~1505), 영조대의 권구(權榘·1672~1749) 등 명신(名臣)·학자(學者)들과 일제강점기에 권오설 등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했다.

한국국학진흥원의 '문중 특별전'은 이번이 6번째다. 2004년부터 전주 류씨 수곡파, 창녕 조씨 지산문중, 풍산 류씨 충효당, 영천 이씨 농암종택, 의성 김씨 청계공파 등 문중 특별전을 개최해왔다. 2002년부터 기록문화유산 수집활동을 벌이고 있는 한국국학진흥원은 현재 고서 9만여 점, 고문서 12만4000여 점, 목판 5만7000여 점 등 27만5000여 점의 문중 기탁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김순석 한국유교문화박물관장은 "조상에게 물려받은 소중한 자료를 기탁해 준 문중들의 고귀한 뜻을 기리는 한편, 기탁자료 가운데 선본(善本)을 일반에 소개함으로써 민족문화의 보존과 계승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매년 문중 특별전을 개최하고 있다"고 말했다. (054) 851-0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