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9.10.27 09:33
"우리도 브로도웨이처럼" 모토…뮤지컬 불모지 새바람
규모-내용 비약적인 발전…'한국의 토니상' 자리매김


제15회 한국뮤지컬대상 시상식이 26일 영광의 주인공들을 가리며 성대하게 열렸다. 한국뮤지컬대상 시상식은 지난 1995년 국내 최초의 뮤지컬 전문 시상식으로 첫 깃발을 올렸다. 한국뮤지컬의 효시는 지난 1966년 임영웅 연출로 극단 예그린(현 서울시뮤지컬단)이 공연한 '살짜기 옵서예'다. 물론 그 무렵 뮤지컬이란 이름을 단 공연이 많았지만 춤과 노래, 드라마의 3위 1체로 이루어진 뮤지컬 형식을 제대로 갖춘 작품은 패티 김 주연의 '살짜기 옵서예'가 처음이었다.
'살짜기 옵서예' 이후 약 30년이 흐른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뮤지컬은 여전히 대중화, 산업화와는 거리가 있었다. 한 해 공연되는 뮤지컬이 50편이 채 안됐고, 그 수준 또한 지금처럼 높지 않았다. 라이선스 작품인 '아가씨와 건달들' '넌센스' 정도가 대중들에게 인지도가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가운데 스포츠조선이 전격적으로 뮤지컬상을 제정하자 뮤지컬계는 물론 공연계에서도 시기상조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지적이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한국뮤지컬대상은 미래를 내다보는 선구자의 자세로 첫 발을 뗐다. '창작뮤지컬의 활성화'를 목표로 내세운 것도 그런 맥락이었다. 브로드웨이에 버금가는 우리 고유의 문화상품을 배출하는 촉진제가 되자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한국뮤지컬대상은 처음 몇 년 작품수 부족, 대중의 관심 부족 등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뮤지컬계 전반의 호응을 얻으면서 빠르게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뮤지컬인들의 축제'라는 의식이 밑바탕에 있었기에 가능했다.
시상식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지난 2000년 3월 본사 주최로 열린 뮤지컬 축제 '아이 러브 뮤지컬'이다. 당시 남경주 최정원 전수경 송용태 윤복희 유희성 등 한국뮤지컬을 대표하는 배우들이 한마음으로 나서 일주일간 세종문화회관에서 갈라쇼를 펼쳤고, 마지막 날 제6회 시상식을 열었다. '아이 러브 뮤지컬'은 그때까지만 해도 최대 규모의 갈라쇼였고, 2000년 이후 뮤지컬 시장의 팽창을 예고하는 신호탄이었다. 흥행에 대성공을 거뒀고, 가능성을 확인한 뮤지컬계는 상업화와 대중화에 자신감을 얻었다.
이후 2001년 '오페라의 유령' 장기 공연을 계기로 뮤지컬 시장이 급속하게 커지면서 한국뮤지컬대상 시상식 역시 규모와 내용 면에서 '한국의 토니상'이라 할 만큼 뿌리를 내렸다. 각 부문별로 경쟁이 치열해졌고, 심사위원들은 그만큼 힘들어졌다.
15년을 거치면서 한국뮤지컬대상은 양적 질적으로 큰 변화와 발전을 겪었다. 하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은 '뮤지컬들의 축제'라는 정신이다.

- Copyrights ⓒ 스포츠조선.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