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chosun.com] '국악계의 젊은피', 다섯 청년의 사물놀이

  • 이영민 기자

입력 : 2009.10.22 19:11 | 수정 : 2009.10.23 03:09

지난 16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세계장애인 문화예술축제 개막식. 풍물 악기를 든 5명의 청년이 700여명 관객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두 볼에 힘이 잔뜩 들어간 굳은 표정으로 동료들과 눈짓을 주고 받던 상쇠 이석현(17)군이 꽹과리를 힘있게 내리쳤다.


“따당따당땅따다당.”


상쇠의 꽹과리 소리에 북과 장구, 징도 자신의 가락을 쏟아냈다. 징에 부딪혀 큰 떨림을 만들어낸 징채는 허공에서 춤추듯 빙글 돌았고, 장구채는 유연하게 좌우를 오갔으며, 북채는 변덕스럽게 강약을 바꿔댔다. 장단이 흘러가자 청년들의 어깨는 들썩였고, 표정에는 신명이 가득찼다.


 

신명은 청년들만의 몫이 아니었다. 서울광장에 왔다가 우연히 땀띠의 공연을 본 빈센트 페이푸다(Vincent Peypoudat·35·프랑스)씨는 “한국의 사물놀이는 사실 처음 들어보는데 젊은 프로 연주자들 같았다”며 “딱딱 맞아떨어지는 박자와 리듬이 흥겹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다른 관객 박순연(51·화곡동·주부)씨도 “다른 아이들보다 100배의 노력은 더 들였을 것 같다”며 “실제 사물놀이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고 웃을 때 너무 예뻤다”고 했다. 


이날 무대에 선 다섯 청년은 경력 6년차 사물놀이패 ‘땀띠’다. 평균 연령 18.6세로 ‘국악계의 젊은 피’이기도 하다. 이 청년들은 그동안 각종 대회에서 수차례 입상했고 큰 행사에서 초청 공연을 할 정도로, 실력도 검증받았다. 

하지만 ‘땀띠’에 붙는 수식어는 “장애청년 사물놀이패”였다. 멤버 5명 전원이 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상쇠인 이군은 뇌병변 2급으로 일어서거나 걷는데 어려움이 있다. 징을 치는 조형곤(18)군과 장구를 치는 신경환(20)군은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다. 또다른 장구 담당 박준호(20)군과 북을 치는 고태욱(18)군은 발달성장애다.


장애는 ‘땀띠’가 만들어지게 된 계기였다. 이들이 지난 2003년 무렵 음악치료의 일환으로 배우던 사물놀이 악기가 지금까지 이어진 것. 물론 배우는 과정에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땀띠’를 지도하는 현승훈씨는 “처음에는 연습을 하다 돌발행동을 하는 친구도 있었고, 그때그때 바뀌는 상황에 대한 적응력을 키우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땀띠’는 ‘2007 공주 세계사물놀이 겨루기 한마당’, ‘2008 전국장애인풍물대회’ 등에서 큰 상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팀 창단 이후 처음으로 정기발표회를 열기도 했고, ‘세계인권선언 선포 60주년 행사’에서 축하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징을 치는 조형곤군도 “장구, 징, 열두발 상모, 괭과리, 모듬북 다 재미있다”고 말했다. 


국악을 통해 이들이 얻은 것은 연주 실력만이 아니었다. 자신감을 얻었고, 사회성이 생겨났다. 이석현군은 “실력이 뛰어나도 소극적이면 여러 사람 앞에서 제대로 공연할 수 없다”라며 “내가 연습한 것을 충분히 보여주려고 하면서 생긴 자신감이 가장 큰 소득”이라고 말했다. 박준호군의 어머니 조상구(43)씨는 “사회성이 떨어지는 준호는 사물놀이를 배우면서 자신의 의사를 좀 더 크고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땀띠는 별도의 외부지원이 없는 터라, 연습이나 공연에 드는 비용을 전액 스스로 마련하고 있다. 이러한 경제적인 고민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건강과 진학으로 ‘땀띠’의 어머니들은 머리가 아플 때도 있다. 하지만 당분간은 ‘땀띠’의 북소리가 매주 1~2회씩 서울 시립미술관 일대로 더욱 힘차게 울려퍼질 것이다. 땀띠는 오는 12월말 두번째 정기발표회를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