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9.10.22 03:12
이승우 원작·한태숙 연출 '도살장의 시간'

연출가 한태숙이 2년 만에 신작 《도살장의 시간》을 내놓는다. 그의 연극에 맞으면 마음이 얼얼하다. 맥베스 부인의 눈으로 셰익스피어 원작을 재해석한 《레이디 맥베스》, 사랑하는 남자를 죽인 동성애자의 여정에 진시황 이야기를 포갠 《서안화차(西安火車)》가 그랬다. 이번 《도살장의 시간》은 펀치력을 입증한 연출가와 작품성이 검증된 원작(이승우의 단편 〈도살장의 책〉)이 만나 연극의 죽음을 다룬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책들은 웅성거리지 않는다. 책들은 이미 죽어 있다"로 시작하는 이승우의 〈도살장의 책〉은 도살장 자리에 들어선 도서관을 배경으로 책의 부패(腐敗), 문학의 죽음을 풍자한다. 소설의 주인공인 도살꾼 천편은 순결해지고 싶어 도서관 사서를 희생양으로 삼는다. 《도살장의 시간》은 그 주제의식을 연극으로 수평이동시킨다. 한태숙이 원작을 읽은 계기부터 드라마틱했다.
"결벽증이랄까, 청소하는 버릇이 있어요. 미국에 사는 동생 집에 갔는데 어찌나 더러운지 3박4일 병날 정도로 청소만 했어요. '제사장처럼 나를 요리해 먹으려 한다'며 동생이 던지듯 준 게 〈도살장의 책〉이에요." 그는 "읽으며 씁쓸했고, 연극 이야기구나 싶었다"고 했다.
그러나 연극은 문학과 다르다. 도서관을 극장으로 바꾼 한태숙은 즉물적인 충격 장치를 들여온다.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무대를 1.8m 지하로 내려 도살장을 배치한다. 관객은 그 피의 구덩이를 내려다봐야 한다. 연출가는 "죽음과 무덤을 연상시키는 깊이"라고 했다. 또 천편의 '내면'(분신)이 등장하고 '기억'이라는 배역도 있다. 한태숙은 강한 외면과 달리 불안하고 나약한 인물의 흔들림과 병적인 심리를 《레이디 맥베스》에서 이미 보여준 바 있다.
그로테스크할 것이라는 짐작은 빗나갔다. 강렬한 에너지와 연극성으로 이름난 이 연출가는 "오히려 서정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과잉에서 물러나 인간이 탐낼 수 있는 한계까지 간다. 반성과 함께 연극의 절망을 보여줄 것"이라고도 했다.
"이번엔 인간의 몸을 도구화시킬 뿐, 특별한 오브제를 쓰지 않아요. 좋아하는 것에 대한 지나친 집착, '천편'과 '내면'의 심리변화에 집중합니다. '연극이 바스러진다'는 느낌으로 작업하고 있어요."
연극사 자료실 여직원(서영화)을 죽이려다 절망에 빠지는 천편의 마지막 순간이 기대된다. 《서안화차》에서 차돌 같았던 박지일이 천편, 무용수 정영두가 그의 내면을 맡는다.
제의(祭儀) 같은 이 연극과 어울리게 개막 공연 때 고사(告祀)도 지낸다. 떡·술·실·북어로 상을 차린다고 했다. 돌잔치도 아닌데 웬 실? "그게 연극이잖아요. 배우와 관객이 정서적으로 이어져야죠."
▶27일부터 11월 8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02)3673-2561~4
"책들은 웅성거리지 않는다. 책들은 이미 죽어 있다"로 시작하는 이승우의 〈도살장의 책〉은 도살장 자리에 들어선 도서관을 배경으로 책의 부패(腐敗), 문학의 죽음을 풍자한다. 소설의 주인공인 도살꾼 천편은 순결해지고 싶어 도서관 사서를 희생양으로 삼는다. 《도살장의 시간》은 그 주제의식을 연극으로 수평이동시킨다. 한태숙이 원작을 읽은 계기부터 드라마틱했다.
"결벽증이랄까, 청소하는 버릇이 있어요. 미국에 사는 동생 집에 갔는데 어찌나 더러운지 3박4일 병날 정도로 청소만 했어요. '제사장처럼 나를 요리해 먹으려 한다'며 동생이 던지듯 준 게 〈도살장의 책〉이에요." 그는 "읽으며 씁쓸했고, 연극 이야기구나 싶었다"고 했다.
그러나 연극은 문학과 다르다. 도서관을 극장으로 바꾼 한태숙은 즉물적인 충격 장치를 들여온다.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무대를 1.8m 지하로 내려 도살장을 배치한다. 관객은 그 피의 구덩이를 내려다봐야 한다. 연출가는 "죽음과 무덤을 연상시키는 깊이"라고 했다. 또 천편의 '내면'(분신)이 등장하고 '기억'이라는 배역도 있다. 한태숙은 강한 외면과 달리 불안하고 나약한 인물의 흔들림과 병적인 심리를 《레이디 맥베스》에서 이미 보여준 바 있다.
그로테스크할 것이라는 짐작은 빗나갔다. 강렬한 에너지와 연극성으로 이름난 이 연출가는 "오히려 서정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과잉에서 물러나 인간이 탐낼 수 있는 한계까지 간다. 반성과 함께 연극의 절망을 보여줄 것"이라고도 했다.
"이번엔 인간의 몸을 도구화시킬 뿐, 특별한 오브제를 쓰지 않아요. 좋아하는 것에 대한 지나친 집착, '천편'과 '내면'의 심리변화에 집중합니다. '연극이 바스러진다'는 느낌으로 작업하고 있어요."
연극사 자료실 여직원(서영화)을 죽이려다 절망에 빠지는 천편의 마지막 순간이 기대된다. 《서안화차》에서 차돌 같았던 박지일이 천편, 무용수 정영두가 그의 내면을 맡는다.
제의(祭儀) 같은 이 연극과 어울리게 개막 공연 때 고사(告祀)도 지낸다. 떡·술·실·북어로 상을 차린다고 했다. 돌잔치도 아닌데 웬 실? "그게 연극이잖아요. 배우와 관객이 정서적으로 이어져야죠."
▶27일부터 11월 8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02)3673-25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