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혜의 '불협화음'] 미(美) 대통령 암살자들의 노래 따발총 같은 멜로디 힘드네

  • 이지혜·작곡가

입력 : 2009.10.22 03:15

뮤지컬 '어쌔신'

이지혜·작곡가
2009년 현재, 김연아의 실력에 이의를 제기한다면 피겨 팬들의 성난 댓글 공격을 당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마찬가지로 작곡가 스티븐 손드하임의 천재성을 의심한다면 미국 골수 뮤지컬 팬들에게 바보 취급을 당할 것이다. 지난 50여년간 쌓아올린 그의 자리는 구름 속 신들의 나라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아마 여신 연아님도 함께?).

하지만 결코 대중적이지는 않은 그다. 좀 과장해서 《오페라의 유령》의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비교한다면 심형래 감독과 김기덕 감독쯤? 뮤지컬을 통한 지적 언어유희의 장을 연 손드하임의 작품들은 문학적으로 높이 평가받지만(그는 퓰리처상 수상자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비영어권 사람들에게는 까칠하다. 따발총 같은 멜로디들은 수학적으로만 느껴지고 말의 리듬에 실려가는 노래들이 다 비슷하게 들릴 수 있다. 영어를 알수록, 가사를 이해할수록 스며드는 중독성은 치명적이지만 말이다.

미국 대통령을 저격했던 인물들을 모은 뮤지컬《어쌔신》./해븐 제공

뮤지컬 《어쌔신》은 '대통령을 쏘고 싶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콘셉트는 매력적이나 미국 역사를 꿰고 있지 않다면 따라가기 벅차다. 음악은 줄곧 차갑고 지적이다. 그래서 〈모자란 사랑(Unworthy of your love)〉이 흐를 때 더욱 반가웠다. 자신의 존재조차 알아주지 않는 이의 관심을 받고자 대통령을 암살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노래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오/ 당신은 바람이고 악마고 신이다…." 심플한 몇 개의 코드와 예쁜 선율에 얹힌 서정적인 가사 뒤에 배배 꼬인 병적 정서가 섬뜩한데, 극중 상황을 모르고 들으면 평범한 러브송으로 '아, 이 노래!' 하는 분들도 있을 만큼 꽤 알려진 곡이다.

뮤지컬의 노래는 내러티브를 끌고 갈수록 가사가 상황에 구체적이 되기 때문에 공연장 밖에서 대중에게 사랑받기는 어렵다. 대가 손드하임은 히트곡 제조에도 남다른 재주가 있는 것인가?

하여간 이 뮤지컬을 보며 든 의문은 '왜 하필 지금 한국에서?'다. 요즘은 학교에서 국사도 안 배우는 지경이라는데 하물며 미국 대통령 암살 역사는 너무 멀지 않은가.

▶11월 8일까지 서울 신촌 더스테이지. 1544-1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