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ABC] 바다에 빠져 부서지고 술값으로 팔려가고…명(名)첼로의 '기구한 팔자'

  • 김성현 기자

입력 : 2009.10.16 03:35

영국의 첼리스트 재클린 뒤 프레./EMI 제공
첼리스트 장한나의 비행기 옆자리에는 누가 탈까요. 심야 TV 연예 프로그램에 출연한 장한나가 사연을 털어놓았습니다. 자신의 첼로를 옆자리에 태우고 '장 첼로'라고 부르며 애지중지하지만 정작 기내식은 물론, 마일리지 적립도 안 된다며 섭섭해했지요.

현악기 중에서 유독 첼로가 비행기의 '승객 대접'을 받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이올린과 비올라는 연주자가 휴대할 수 있고, 웬만한 성인 남성의 키를 훌쩍 뛰어넘는 더블베이스는 휴대가 불가능하기에 화물 운송을 해야 합니다. 더블베이스 연주자 중에서는 활만 갖고 다니며 현지에서 악기를 구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반면, 첼로는 고가(高價)의 악기가 많은데다 파손 우려도 적지 않기 때문에 곁에 태우는 것이 안전하고 속 편합니다. 따라서 공연 주최 측은 유명 첼리스트를 초청할 때 항공료를 두 배로 계산합니다. 과민한 음악가들의 노심초사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 첼로를 일반화물로 부쳤다가 크게 낭패를 본 경우도 있습니다. 2005년 한 젊은 연주자가 자신을 후원하는 유수의 문화재단이 대여해준 첼로의 비행기 비용을 아끼기 위해 화물로 부쳤다가, 그만 첼로 뒤판에 금이 가고 말았던 모양입니다. 대수술을 거쳐 지금은 회복 중이라고 하지만, 문화재단은 가슴이 철렁했을 것입니다.

역사상 최고의 악기 제작 명인으로 꼽히는 이탈리아의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1644~1737)는 평생 1100여개의 현악기를 제작했지만, 지금 전해지는 첼로는 50대 정도에 불과합니다. 이 가운데 1711년쯤 제작한 '마라(Mara)'라는 첼로가 있습니다. 악기의 주인이었던 타락한 천재 첼리스트 조반니 마라(1744~1808)에서 따온 것이지요.

'악덕, 여자, 사치, 술'로 삶을 탕진한 마라는 오페라 가수였던 아내가 떠나자 빈털터리가 되어 첼로를 팔아넘겼습니다. 이 첼로는 그 후에도 수차례 주인이 바뀐 끝에 1963년 여객선 침몰로 침수되어 분해되는 천신만고를 겪었습니다. 영국 런던에서 700시간의 수술을 거쳐 부활한 이 악기는 현재 오스트리아 출신의 첼리스트 하인리히 쉬프가 연주하고 있습니다.

1711년산(産) 뒤포르 첼로는 2007년 타계한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가 연주했지요. 1712년산 다비도프 첼로는 영국 첼리스트 재클린 뒤 프레를 거쳐 지금은 요요 마의 손에 쥐여 있습니다. 이처럼 전설적 첼로 명기(名器)는 명(名)연주자의 손을 거치면서 가치와 가격이 더욱 뜁니다.

오만한 인간은 스스로가 만물의 주인이고 첼로는 악기일 뿐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300년에 이르는 악기 마라의 '인생 역정'을 다룬 책 《첼로 마라》(생각의나무)를 읽다 보면, 거꾸로 우리가 스쳐 지나가는 손님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친구처럼 대화도 나눈다는 장한나처럼, 첼로도 '주인 하기 나름'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