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9.10.16 03:35
쿵…. 치욕의 순간, 가슴이 내려앉다
수직의 대나무로 촘촘히 채운 무대가 열릴 때 으르렁으르렁 짐승 소리가 돌진해온다. 병자년(丙子年)의 찬 겨울바람이 뒤섞인다. 이조판서 최명길(강신일)이 상소한다. "명(明)은 지는 해요 청(淸)은 뜨는 해입니다…죽어서 사느니 살아서 사는 길을 택해야 합니다." 남한산성으로 피란 가는 인조(성기윤)가 두려움을 감추며 부르는 노래는 비통하다. "산성으로 눈 구경 간다/ 산성으로 한숨 자러 간다~."
김훈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무대로 옮긴 뮤지컬 《남한산성》(연출 조광화)은 이렇게 시작된다. 주제는 그대로였지만 삼학사(三學士) 중 한 명인 오달제(김수용)를 주인공으로 세우고 부인 남씨(임강희), 기생 매향(배해선)과 러브라인을 만들면서 원작에서 벗어났다. 남씨와 매향이 부르는 이중창 〈차마 놓을 수 없어〉처럼 이 뮤지컬에는 긍정과 부정, 낙관과 비관이 겹쳐 있었다.
김훈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무대로 옮긴 뮤지컬 《남한산성》(연출 조광화)은 이렇게 시작된다. 주제는 그대로였지만 삼학사(三學士) 중 한 명인 오달제(김수용)를 주인공으로 세우고 부인 남씨(임강희), 기생 매향(배해선)과 러브라인을 만들면서 원작에서 벗어났다. 남씨와 매향이 부르는 이중창 〈차마 놓을 수 없어〉처럼 이 뮤지컬에는 긍정과 부정, 낙관과 비관이 겹쳐 있었다.

14일 성남아트센터에서 공식 개막한 《남한산성》은 1막에서 장면 전개가 너무 빨라 숨이 가빴다. 등장인물이 많고 각자에게 노래로 존재감을 주려다 보니 덩치가 커졌고, 그것을 만회하려고 속도를 내다가 긴장·이완의 리듬감을 놓친 것이다. 음향은 너무 커 라이브 오케스트라와의 균형감을 잃곤 했다. 집중하며 즐기기가 버거웠다.
그러나 이 뮤지컬은 2막, 특히 후반부로 갈수록 정돈됐고 마지막엔 진면목을 보여줬다.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걸어나와 무릎 꿇고 항복하는 치욕의 순간이 가장 빛났다. 인조를 닮은 인형이 무대 바닥에 머리를 세게 부딪치며 9번 절을 했다. 쿵, 쿵, 쿵…. 관객은 점점 큰 진동을 몸으로 느꼈다. 그리고 배우들은 천천히 뒷걸음질로 퇴장하는데 조명과 어울리며 아름다운 밀도를 빚어냈다.
달제가 부르는 〈나의 길은〉, 매향이 부르는 〈남자라면〉 등 몇몇 곡은 인물과 이야기의 흐름을 정확하게 짚어냈다. 곧은 대나무를 이용한 정승호의 무대미술도 좋았다. 차가운 얼음과 따뜻한 불로 성의 안과 밖, 그 공간을 채우는 사람들의 심리를 드러냈다. 김수용은 노래의 결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 배해선과 서범석(홍타이지)도 믿음직한 연기와 가창력으로 박수를 받았다. 김경선의 희극성은 관객에게 쉴 틈을 줬다. '슈퍼주니어' 예성은 조국에 복수하는 정명수 역을 맡았지만 무르익지 않아 맛이 아렸다. 강신일은 몰입에 비해 가창력이 불안했다. 하지만 이런 흠들은 복구 가능하다는 점에서 《남한산성》은 미래가 밝다. 성남아트센터는 앞으로 5년간 이 뮤지컬을 손질해 대표 브랜드로 키울 계획이라고 밝혔다.
▶11월 4일까지 경기도 성남아트센터. 1544-8117
그러나 이 뮤지컬은 2막, 특히 후반부로 갈수록 정돈됐고 마지막엔 진면목을 보여줬다.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걸어나와 무릎 꿇고 항복하는 치욕의 순간이 가장 빛났다. 인조를 닮은 인형이 무대 바닥에 머리를 세게 부딪치며 9번 절을 했다. 쿵, 쿵, 쿵…. 관객은 점점 큰 진동을 몸으로 느꼈다. 그리고 배우들은 천천히 뒷걸음질로 퇴장하는데 조명과 어울리며 아름다운 밀도를 빚어냈다.
달제가 부르는 〈나의 길은〉, 매향이 부르는 〈남자라면〉 등 몇몇 곡은 인물과 이야기의 흐름을 정확하게 짚어냈다. 곧은 대나무를 이용한 정승호의 무대미술도 좋았다. 차가운 얼음과 따뜻한 불로 성의 안과 밖, 그 공간을 채우는 사람들의 심리를 드러냈다. 김수용은 노래의 결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 배해선과 서범석(홍타이지)도 믿음직한 연기와 가창력으로 박수를 받았다. 김경선의 희극성은 관객에게 쉴 틈을 줬다. '슈퍼주니어' 예성은 조국에 복수하는 정명수 역을 맡았지만 무르익지 않아 맛이 아렸다. 강신일은 몰입에 비해 가창력이 불안했다. 하지만 이런 흠들은 복구 가능하다는 점에서 《남한산성》은 미래가 밝다. 성남아트센터는 앞으로 5년간 이 뮤지컬을 손질해 대표 브랜드로 키울 계획이라고 밝혔다.
▶11월 4일까지 경기도 성남아트센터. 1544-8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