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인생이란 바다에는 별별 일이 다 일어난다"

  • 박돈규 기자

입력 : 2009.10.15 03:16

연극 '뱃사람'

밀려와 부딪치고 물러갔다 또 때리고. 연극 《뱃사람》(연출 이성열)은 파도 소리로 다가온다. 지난밤 폭음의 흔적인 듯 무대엔 술병이 즐비하다. TV는 칙칙거린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아침으로 열린 연극은 한낮을 지나 술판과 카드게임으로 밤을 새우고 크리스마스 아침으로 닫힌다.

술과 인생이 이 연극의 재료다. 사건은 알코올 중독에다 시력도 잃은 괴팍한 형 리차드(이호재)와 그를 돌보러 온 동생 샤키(이남희)의 집에서 펼쳐진다. 중년남자들이 모여들고 술을 마시며 지껄인다. 맥주, 금딱지(위스키)에 밀주(密酒)까지 술은 잘도 넘어간다. 흥청망청 굴러가던 드라마는 니키(이명호)가 데려온 정체불명의 사내 록하르트(정동환)가 샤키에게 "난 네 영혼을 원해!"라고 말하면서 급회전한다. 목숨 건 카드게임의 시작이다.

술과 인생, 파도와 음악에 대한 작가의 직관이 느껴지는 연극《뱃사람》./컬티즌 제공
배우들의 조합이 이상적이다. 소리 빽 지르는 술꾼 리차드는 딱 이호재다. 록하르트 정동환은 차돌 같은 단단함으로 관객을 집중시켰다. 덜렁대는 불쌍한 공처가 아이반(이대연)은 희극적인 이완을 준다. 샤키의 전처와 동거 중인 니키는 자체로 연극적이다. 샤키 이남희는 평소와 다른 화법을 쓰며 감정 진폭이 큰 인물을 견뎌냈다.

이 연극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무관심한 척하는 인생, 그 돌이킬 수 없는 흐름을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스산하게 포착한다. "인생이라는 바다엔 별별 일이 다 일어난다"(니키) "그래야 웬만한 파도에도 끄떡없이 버틸 수 있는 거야"(리차드) 같은 대사처럼, 엉망진창 난장판을 만들어놓고 어떤 진실의 조각을 내민다. 기타 라이브 연주와 찬바람이 쌩 불어오는 음향도 어울렸다.

악마 록하르트는 샤키를 지옥으로 데려가려 한다. 그가 말하는 '지옥'은 "끝도 없이 걷고 완전히 혼자인데 영원히 죽지 않는 것"이다. '죽음이란 영원히 죽지 않는 것'이라는 역설(逆說)과 직관이 섬뜩하다. 마지막 승부에서 샤키와 록하르트는 판돈을 계속 올린다. 이 게임, 어떻게 될까.

▶18일까지 서울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02)765-54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