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세 젊은 피, 노인정 비아냥 듣던 뉴욕필을 바꾸다

  • 김성현 기자

입력 : 2009.10.13 03:08

새 지휘자 길버트, 첫 해외투어… 오늘까지 한국서 공연
부모가 뉴욕필 첫 '부부단원' 어릴적 주빈 메타 지휘 매주 봐
어머니, 아직도 단원으로 활동 단원들 앞에서도 엄마라 불러

"우리가 노인정이냐." 쿠르트 마주어(82)와 로린 마젤(79) 등 노장들이 19년간 뉴욕 필하모닉을 이끌자, 뉴욕의 언론들은 단단히 뿔이 났다. 명(名)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과 리카르도 무티에게 잇달아 구애를 했지만, 그마저 딱지를 맞자 뉴욕 언론의 보도는 거의 성토에 가까웠다. 그렇게 곤경에 처했던 뉴욕 필은 올해 42세의 젊은 지휘자 앨런 길버트(Gilbert)를 음악감독으로 맞아들이는 승부수를 띄웠다.

지난달 취임 직후 뉴욕 필과 함께 한국과 일본·베트남·아랍에미리트로 첫 해외투어에 나선 길버트는 12~13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두 차례 내한공연을 앞두고 12일 본지와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지난달 뉴욕 필하모닉의 음악감독으로 취임한 지휘자 앨런 길버트는“부부 단원이셨던 부모님이 해외 공연이라도 나가면 집이 텅텅 비기 때문에 어릴 적부터 언제나 따라다녀야 했다”고 말했다./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제공

"어릴 적 뉴욕 필의 청소년 콘서트에서 친절하게 곡을 해설하면서 지휘하는 마이클 틸슨 토머스(현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지휘자)의 모습에 반하고 말았어요. 하지만 정작 정기연주회에 갔더니 아무도 말을 하지 않고 음악만 연주해서 실망했던 기억이 나요."

길버트는 2001년까지 뉴욕 필의 바이올린 단원으로 재직한 아버지 마이클과 1979년부터 역시 뉴욕 필의 바이올린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일본계 어머니 다카베 요코 사이에서 태어난 '뉴욕 필 가족'이다. 그는 "어머니는 악단의 첫 여성단원 중 한 명이었으며, 부모님은 첫 부부단원이었다"고 했다.

부모님 손을 잡고 찾아오던 꼬마가 지금은 오케스트라를 이끌게 된 셈이다. 그는 "여덟 살 때 뉴욕 필이 카네기 홀에서 2주간 말러 교향곡을 연주했는데, 주인 없는 좌석을 빨리 찾기 위해 아버지에게 일찍 가자고 조르곤 했다. 주빈 메타와 마주어 시절부터 거의 매주 연주를 보면서 공연장에서 살다시피 했다"고 말했다.

부모가 모두 뉴욕 필 단원이기에 그는 해외공연에도 대부분 따라나섰다. 그는 "부모님 가운데 한 분만 단원인 경우는 아이들이 집에 머물 수 있었지만, 나는 집이 텅텅 비기에 함께 가야만 했다"고 말했다.

일찍부터 바이올린과 비올라·피아노 등을 배운 그는 하버드대와 커티스 음악원 등에서 수학했다. 2000년부터 스웨덴의 로열 스톡홀름 필하모닉을 이끌다가 지난달 뉴욕 필의 음악감독으로 취임했다. 2001년 뉴욕 필을 처음 지휘했던 그는 "보통 오케스트라와 처음 만날 때는 낯설게 마련인데, 뉴욕 필은 단원 대부분을 이미 알고 있다는 점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제1바이올린 단원인 어머니와 함께 내한한 그는 "보통 오케스트라 앞에서도 '엄마(Mom)'라고 부르지만, 여럿이 함께 연주하는 현악 파트이기 때문에 부를 기회는 별로 없다"며 웃었다.

취임과 더불어 길버트는 현대음악 시리즈인 '콘택트(Contact)'를 도입하고, 신작 초연을 늘리는 등 과감한 개혁 조치에 발동을 걸었다. 그는 "21세기 들어 인터넷부터 디지털 음원, 녹음방식까지 모든 것이 급격히 변화하고 있지만, 우리가 여전히 함께 앉아서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 점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