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최광호의 크레이지 포토] 아버지 무덤서 벗고 사진찍은 母子

  • 최광호·사진가

입력 : 2009.10.10 03:30 | 수정 : 2009.10.10 14:36

처음부터 대단한 예술작품을 만들겠다고 마음먹는다고 '작품'이 되는 건 아니다. 나는 밀로의 비너스보다 발렌도르프의 비너스를 더 좋아한다. 3만년 전 작품임에도 밀로의 것보다 순수하기 때문이다.

모델을 통해 만들어진 '예쁜 작품'이 넘쳐난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실상 예쁘지도 않다. 꾸미고 만들어가는 아름다움은 있지만 자연스럽지 않은 탓이다. 그게 내가 가족사진과 포토그램에 매달리는 이유다.

나는 지금도 술 한 잔 걸치면 어머님을 꼭 안고 젖을 만진다. 어머니는 항상 질색한다. "야! 네 것이나 만져"라고. '네 것'이란 내 아내의 것을 말한다. 그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 산소에 벌초를 하러 갔다.

그곳에서 '엄마 젖의 주인은 아버지인데 이걸 사진으로 찍으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애원하기 시작했다. "무슨 소원이냐"는 말에 "엄마, 여기서 벗고 아버지랑 같이 사진 찍자"고 했다.

대답은 뻔했다. "야, 이 미친놈아 무덤에서 벌건 대낮에 벌거벗고 사진 찍자는 놈은 너밖에 없을 거다!" 무덤에서 벗기려는 아들과 벗지 않으려는 어머니의 실랑이가 계속됐다. 그러나 자식을 이길 어머니가 있으랴.

'벗으면 자식이 유명해진다'는 말에 어머니는 벗고 말았다. "내 몸에서 나왔지만 너는 참 별종(別種)이야"라고 말하면서. 여기서 멈추면 사진가가 아니다. 나는 산소에서 내려와 어머니를 작업실로 데려갔다.

나는 어머니를 큰 인화지 위에 누이고 무덤에서 베어온 풀과 함께 포토그램을 했다. 이처럼 사진기는 사진의 본질적인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다. 포토그램은 인화지 위에서 아름다움의 가치를 찾는 것이다.

1996년 강원도 고성에서 대형 산불이 일어났다. 그곳에 가보니 자연복구라고 행해지는 행동들이 모두가 자연파괴처럼 보였다. 나는 고민하다 '내가 먼저 벗고 자연에 다가가자'고 마음먹었다.

내가 벗고 사진 찍으니 일행들이 일제히 나를 찍기 시작했다. 나는 말했다. "나를 찍으려면 너희도 벗어."라고. 고성 산불이 일어난 현장에서 수십명이 알몸이 됐다. 내 '땅의 숨소리'시리즈는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내 작품은 미치도록 열심히 살다 보니 나도 모르게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것을 사람들은 예술이라 부른다. 그래서 나는 나 스스로 늘 매 순간 감동하며 '너 잘났어! 넌 천재야!' 자아극찬 하면서 감동에 겨워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