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네 인간은 퇴화하고 있어"

  • 박돈규 기자

입력 : 2009.10.08 03:08

거북이가 말하는 거북한 진실
국내 초연 스페인 연극 '다윈의 거북이' 쓴
후안 마요르가
175세 거북이 시선으로 인간의 어리석음 풍자
"우린 왜 짐승같이 사는가"

희곡《다윈의 거북이》를 쓴 스페인 극작가 마요르가는“연약한 자들의 시선으로 보면 역사는 대재앙”이라며“진정한 발전은 그 재앙을 멈추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서울시극단 제공
저명한 역사학자를 찾아온 여인이 대뜸 말한다. "당신의 역사 서술은 다 엉터리요!" 자신이 1894년 드레퓌스 사건, 1917년 러시아 10월 혁명, 1944년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을 목격했다는 주장 앞에 역사학자는 말문이 막힌다. 급기야 여인은 "제가 다윈의 거북이예요"라고 고백한다. 찰스 다윈(1809~1882)이 남미 앞바다의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배에 태운 암거북, 헤리엇이라는 것이다.

스페인 최고 연극상인 맥스(Max)상을 차지한 후안 마요르가(Mayorga·44)의 희곡 《다윈의 거북이》는 이렇게 출발한다. "2006년 헤리엇의 사망(175세) 소식을 접하는 순간 나이가 많고 여행을 많이 한 그가 '글감'임을 직감했다"고 말했다. 올해는 다윈 탄생 200주년이자 《종의 기원》 출간 150주년. 연극 《다윈의 거북이》(연출 김동현) 국내 초연을 앞두고 작가를 이메일로 만났다.

―진화론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동물과 인간을 연결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극중 헤리엇은 인간으로 진화했다. 그러나 그것은 자연의 변화에 적응한 결과가 아니라 인간이 일으킨 재앙 때문이었다. 헤리엇은 스페인내전에서 게르니카 폭격 때 도망치기 위해 두 발로 서게 됐고, 2차 세계대전 중 유대인 아기를 구하려다 인간의 목소리를 얻었다."

―결국 헤리엇은 인간이 동물 중 가장 어리석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을 죽인다. 그것도 '자연선택'인가?

"175년을 버틴 헤리엇에겐 남다른 무기가 있었다. 인내심, 기민함, 유머다. 그것이 이기주의나 권력욕을 이긴다."

거북이 헤리엇 역을 맡은 배우 강애심./서울시극단 제공

―진화를 말하는 척하면서 인간의 퇴화를 풍자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퇴화의 사례는 흔하다. 헤리엇이 관찰했듯이, 우리는 모든 인류에게 식량과 안전을 제공해 줄 능력이 있다. 그러나 지금도 누군가는 굶어 죽고 위험에 처해 있다."

―철학과 수학을 전공한 당신은 지금 희곡을 쓴다.

"수학자와 극작가는 '종합'을 추구한다. 피타고라스 정리처럼, 복잡한 것들을 단순화하는 작업이다. 희곡도 비계(군살)는 다 버려야 한다. 연극은 배우의 표정으로 그 심리를, 그네 하나로 공원 전체를 표현할 수 있다."

―당신 작품에는 고릴라·개 등 동물이 등장하는 것이 많다.

"인간을 동물화하는 것은 우리 시대의 특징이다. 헤리엇이 말했듯이, 많은 사람이 짐승 같은 대우를 받고 있으며, 어떤 이들은 짐승처럼 행동한다."

―한국에서도 과거 문제로 서로 으르렁거리는 일이 많다. 이달에 내한해 강연하는데 어떤 말을 할 계획인가.

"갈등과 분열이 많은 곳일수록 그렇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이들이 잊으려고 애쓰는 것을 기억하고 싶어한다. 분노를 위한 기억이 아니라 행복을 위한 기억이어야 한다."

▶서울시극단이 9일부터 11월 1일까지 세종M씨어터에서 공연. (02)399-11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