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하는 남자 임창정

  • scene PLAYBILL editor_김일송
  • photographer_한길

입력 : 2009.10.07 10:46

임창정

비 오는 날이면 외롭고 쓸쓸한 마음. 우산 하나 받쳐 들고 또 하루를 살아가요
비 오는 날이면 떠나고 싶은 마음. 우산 하나로 가리고 또 하루를 살아내요
- 뮤지컬 '빨래' '비 오는 날이면' 중

임창정을 만난 날은 비가 정말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이었다. 공연시작 두 시간 전, 그가 극장에 얼굴을 내밀었다. 케이블TV Mnet '슈퍼스타K'의 촬영을 막 마치고 오는 길이었다. 현재 그는 스타 발굴 프로그램인 '슈퍼스타K'의 MC로, KBS TV 예능 프로그램 '천하무적 야구단'의 일원으로, 그리고 영화 '청담보살'과 뮤지컬 '빨래'에 배우로 출연 중이다. 보통 이렇게 바쁜 상황에서 'A급' 스타들은 일주일에 한두 번 출연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들과 달리 임창정은 하루 걸러 한번 꼴로 무대에 오르고 있다. 몸이 두 개라도 바쁜 날이다. 그 정도면 스트레스 받을 만도 하다.

"스트레스요? 그런 거 안 받아요. 전 여러 가지 일을 하잖아요. 오늘 뮤지컬 무대에 오르면, 내일은 촬영장에서 영화 찍고, 그 다음 날은 방송을 찍으니까요. 그게 얼마나 다행이에요." 한번은 임창정과 함께 영화를 찍고 있는 박예진이 물었단다. 어쩌면 그렇게 항상 웃으면서 사느냐고. 임창정의 대답은 간단명료하다. 즐거우니까. 그것이 전부다. 자신을 즐겁게 하는 일이라면 노 개런티도 불사한다. '천하무적 야구단'에서는 다른 연예인들 두 배의 개런티를 받지만, '빨래'에서는 노 개런티였다.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공연 때 개런티를 다 못 받았거든요. 이번에 학전에서 돈 벌면 개런티 준다고 해서 끌려온 거예요. 그러니까 이번 공연이 잘 돼야 해요."

지난 봄 '빨래' 두산아트센터 공연에 출연했던 임창정은 대학로로 자리를 옮긴 학전그린 공연에도 출연하고 있다. 그가 여기서 맡은 역은 몽고 출신의 노동자 솔롱고. 대학까지 졸업한 후,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고향을 떠나 한국에 온지 5년. 뮤지컬은 그가 사는 옥탑방 옆 건물로 나영이 이사 오면서 시작된다. 작은 서점의 직원인 나영은 돈 벌기 위해 고향인 강릉을 떠나온 예쁘고 참한 처녀. 뮤지컬은 빨래를 널면서 시작된 두 사람의 인연이 한 세탁기를 공유하는 연인 관계로 발전하는 소박한 사랑이야기다.

임창정은 '빨래' 출연 전 작품을 3번 관람하며 자신이 참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관객으로서 느낀 감정을 직접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노 개런티 출연을 결정하게 되었다. 무엇이 그를 감동시켰을까? 그는 1막 끝 '비오는 날이면' 장면에 그 답이 있다고 말한다. 특히 그 넘버에서 솔롱고 혼자 부르는 '서울살이 5년…….'이라는 부분에.

"서울살이 5년, 다섯 번째 공장. 받은 월급보다 더 쌓인 밀린 월급. 비 오는 날이면 가족 생각에 온 맘이 저리고. 비오는 날이면 온 몸이 쑤셔 와요, 라고 시작되는 노랜데요, 정말 그 부분을 부를 때마다 항상 눈물이 나요. 예전에 고생했던 때, 그때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아서요. 저도 배우 되기 전에 공사장 인부, 웨이터 등 안 해본 게 없거든요." 그때의 냄새, 그것은 가난의 냄새다. 후각으로 느낄 수 있는 가난의 냄새. 진저리치게 다시 맡고 싶지 않은 그 냄새가 임창정을 빨래터로 끌고 와 '빨래'하게 만들었다.


사실 그동안 에디터는 '빨래'를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작품의 주제의식에는 공감하지만, 교훈과 감동을 강요하는 듯한 그 형식에는 공감할 수 없었다. 그런데 비 오던 그날, 임창정이 출연하던 그 공연에서 에디터는 전에 없던 공감을 하고 있었다. 에디터가 변한 걸까? 작품이 변한 걸까? 분명한 사실은 그의 '소주 한 잔'을 들으며, 부르며 느꼈던 그 절절함이 '빨래'에서도 느껴졌다는 것뿐. 오늘도 '빨래'하는 남자 임창정. 그에게 감사한다. 그로 인해, 함께 출연한 모든 배우들로 인해 공연시간 두 시간 동안 행복을 느꼈으니까.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