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혜의 '불협화음']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 작곡가 이지혜

입력 : 2009.09.24 03:10

변성기의 주인공… 춤이 더 기다려지는 무대

작곡가 이지혜
지금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잘나가는 뮤지컬은 같은 제목의 영화를 무대로 옮긴 《빌리 엘리어트》다. 영화를 감독한 스티븐 달드리가 연출을 했고(그는 무대연출가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엘튼 존이 곡을 쓴 이 영국발(發) 뮤지컬은 올해 토니상 10개 부문을 비롯해 각종 상을 휩쓴 후 매진을 거듭하며 승승장구 중이다.

영화가 워낙 훌륭했고 세계적인 스태프가 제작한 데다 춤추는 소년이 무대를 종횡무진한다니 중생들이야 지갑을 열 수밖에. 나 역시 두근두근 극장에 들어섰다. 그런데 오 마이 갓! 음악은 기대 이하였다. 단 한 번도 음악 때문에 감동하지 못했고, 가장 꽂히는 선율은 《레 미제라블》에 나온 멜로디였으며, 노래만 시작하면 극이 멈추는 기분에 '빨리 춤이나 췄으면' 하고 바랐다.

내년 국내 초연되는 뮤지컬《빌리 엘리어트》./매지스텔라 제공
물론 얼굴마담의 중요성을 알고는 있다. 하지만 이건 연기 못 하는 인기배우를 주역으로 캐스팅하는 경우와는 다르지 않은가. 음악이 '엘튼 존' 라벨을 달고 무대를 둥둥 떠다니는 것도 아니고! 그의 전성기 때 음악을 무척 좋아하는 팬인 나이지만 한 명의 예술가가 이룰 수 있을 만큼 모든 것을 이룬 뒤 그다지 열심히 안 해도 되는 시기에 도달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영화를 사랑한 사람으로서, 이 분야에 종사하는 음악인으로서 좀 화가 났다.

서글프게도, 가장 잘 알려진 노래인 〈Electricity(전기)〉가 흐를 때조차 감동의 스파크는 일지 않았다. 춤을 출 때 어떤 기분이냐는 질문에 "잘 설명할 수는 없지만 전기가 안에서 일어나고, 나는 모든 것을 잊고, 자유롭다"는 내용의 노랫말을 가진 곡인데, 안타깝게도 소년(빌리)이 변성기에 진입한 탓도 크리라.

이 공연의 다른 매력과 대중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원작의 힘으로 어쨌든 극은 흘러갔고 춤은 매혹적이었으므로. 문제는 '팔리는 뮤지컬'에서 음악은 그다지 중요한 요소가 아닌 것 같다는 서글픔이었다. 음악으로 생계를 유지하고픈 나와 내 동지들이 어쩌면 더 이상 노력할 필요조차 없겠다는 생각에 깊게 절망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