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9.09.17 03:00
농부와 시골 처녀들은 들판에서 한창 바쁘게 땀 흘리고 있지만, 정작 마을의 똑똑한 아가씨 아디나는 나무 그늘에서 여유롭게 책을 읽고 있습니다. 도니체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의 첫 장면입니다.
여주인공 아디나가 손에 들고 있는 책은 '트리스탄과 이졸데'입니다. 숙부 콘월 왕의 신부를 맞이하기 위해 떠났던 트리스탄이 돌아오는 배 안에서 극약 대신 사랑의 묘약을 마시고, 이졸데 공주와 사랑에 빠지는 대목입니다. 책을 읽던 아디나는 "이렇게 잘 듣는 묘약이 있다면, 사랑이란 걱정할 필요가 없겠지"라며 까르르 웃음을 터뜨립니다. 이 장면은 앞으로 오페라의 전개에서 묘약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일종의 암시가 됩니다.
여주인공 아디나가 손에 들고 있는 책은 '트리스탄과 이졸데'입니다. 숙부 콘월 왕의 신부를 맞이하기 위해 떠났던 트리스탄이 돌아오는 배 안에서 극약 대신 사랑의 묘약을 마시고, 이졸데 공주와 사랑에 빠지는 대목입니다. 책을 읽던 아디나는 "이렇게 잘 듣는 묘약이 있다면, 사랑이란 걱정할 필요가 없겠지"라며 까르르 웃음을 터뜨립니다. 이 장면은 앞으로 오페라의 전개에서 묘약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일종의 암시가 됩니다.

아디나를 짝사랑하는 마을 청년 네모리노는 그녀의 맘을 돌릴 길이 없을까 고민하던 끝에 돌팔이 약장수 둘카마라에게 사랑의 묘약을 구입합니다. 실은 싸구려 포도주이지요. 숙부의 유산을 물려받게 됐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동네 처녀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지만, 순진한 네모리노는 묘약의 약효가 드디어 통한 것이라며 기뻐합니다. 이처럼 현실과 착각 사이의 간극에서 한바탕 유쾌한 희극이 빚어집니다.
반면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묘약에는 비극의 씨앗이 들어 있습니다. 자신의 약혼자를 죽인 원수의 집안과 결혼할 처지의 이졸데는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며 극약을 주문하지만, 차마 볼 수 없었던 시녀 브란게네가 극약 대신 사랑의 묘약으로 바꿔놓은 것이지요. 사랑을 확인한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격정적인 2중창을 배 안에서 부르며 포옹합니다.
하지만 조카와 숙모 사이가 된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어긋난 사랑에 진정한 해결책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때 묘약은 괴로운 현실에서 도피하고, 잠재의식 속에 도사리고 있는 죄책감을 씻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달아날 출구마저 보이지 않기에 이 사랑은 결국 처절한 비극이 되고 맙니다.
"죽음으로 모든 비극은 끝나고, 결혼으로 모든 희극은 끝난다"고 말했던 시인은 영국의 바이런(Byron)입니다. 여기서 비극이 《트리스탄과 이졸데》라면, 희극은 《사랑의 묘약》이겠지요. 사랑의 완성이 아니면 죽음뿐이라는 결론은 의미심장합니다.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말미에 이졸데가 숨을 거두며 부르는 노래 〈부드럽고 조용하게 미소 짓고〉에는 '사랑의 죽음'이라는 또 하나의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죽음과 행복을 동일시하는 건 일종의 '형용 모순'입니다. 하지만 죽음을 택한 이졸데는 "이 크나큰 세상의 울림 속으로 뛰어들어 가라앉는다면 너무 행복할 것"이라며 오히려 희열을 드러냅니다.
같은 묘약이 등장하지만, 《사랑의 묘약》과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이처럼 극단적인 갈림길에 있습니다. 희극이든, 비극이든 오늘날에도 여전히 고전이 상연되고 사랑을 받는 것은 언제 어디서든 통용되는 보편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립오페라단 《사랑의 묘약》, 9월 26~30일 서울 예술의전당
▶3개 극장 합작 오페라 《사랑의 묘약》, 9월 17~19일 대전문화예술의전당, 10월 8~10일 대구오페라하우스, 10월 16~18일 고양아람누리
반면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묘약에는 비극의 씨앗이 들어 있습니다. 자신의 약혼자를 죽인 원수의 집안과 결혼할 처지의 이졸데는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며 극약을 주문하지만, 차마 볼 수 없었던 시녀 브란게네가 극약 대신 사랑의 묘약으로 바꿔놓은 것이지요. 사랑을 확인한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격정적인 2중창을 배 안에서 부르며 포옹합니다.
하지만 조카와 숙모 사이가 된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어긋난 사랑에 진정한 해결책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때 묘약은 괴로운 현실에서 도피하고, 잠재의식 속에 도사리고 있는 죄책감을 씻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달아날 출구마저 보이지 않기에 이 사랑은 결국 처절한 비극이 되고 맙니다.
"죽음으로 모든 비극은 끝나고, 결혼으로 모든 희극은 끝난다"고 말했던 시인은 영국의 바이런(Byron)입니다. 여기서 비극이 《트리스탄과 이졸데》라면, 희극은 《사랑의 묘약》이겠지요. 사랑의 완성이 아니면 죽음뿐이라는 결론은 의미심장합니다.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말미에 이졸데가 숨을 거두며 부르는 노래 〈부드럽고 조용하게 미소 짓고〉에는 '사랑의 죽음'이라는 또 하나의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죽음과 행복을 동일시하는 건 일종의 '형용 모순'입니다. 하지만 죽음을 택한 이졸데는 "이 크나큰 세상의 울림 속으로 뛰어들어 가라앉는다면 너무 행복할 것"이라며 오히려 희열을 드러냅니다.
같은 묘약이 등장하지만, 《사랑의 묘약》과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이처럼 극단적인 갈림길에 있습니다. 희극이든, 비극이든 오늘날에도 여전히 고전이 상연되고 사랑을 받는 것은 언제 어디서든 통용되는 보편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립오페라단 《사랑의 묘약》, 9월 26~30일 서울 예술의전당
▶3개 극장 합작 오페라 《사랑의 묘약》, 9월 17~19일 대전문화예술의전당, 10월 8~10일 대구오페라하우스, 10월 16~18일 고양아람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