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뮤지컬을 기대하세요

  • 성남문화재단
  • 글_김아형(월간 sceneplaybill 기자)
  • 사진_정형우

입력 : 2009.09.10 17:02

뮤지컬 '남한산성'의 세 배우 이필모, 배해선, 김수용

(좌측부터) 이필모, 배혜선, 김수용
관객이 우선이다_이필모

한여름 볕이 눈부셨던 오후, 대학로 어귀에서 이필모를 만났다. 환하게 웃으며 걸어오던 그는 몇 걸음을 못 가 멈추어 섰다가 걷다가를 반복했다. 알아보는 아주머니들에게 서글서글한 미소로 일일이 인사를 건네느라고. 스타 캐스팅을 예상하긴 했지만 뮤지컬 '남한산성'의 주요 배역을 발표하는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이필모라는 이름을 발견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TV드라마 '솔약국집 아들들'에서 대풍 역으로 한창 인기몰이 중인 그가 뮤지컬에, 그것도 창작·사극 뮤지컬에 출연하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우연한 기회였죠. 드라마에서 공연을 보는 장면이 있었는데 성남아트센터에서 촬영을 했어요. 공연장이 정말 훌륭하더라고요. 그런데 우연히 출연 제의가 들어온 거예요. 최근 출연했던 뮤지컬 '진짜진짜 좋아해'가 상대적으로 소화하기 편한 작품이었던 것에 비하면 '남한산성'은 어렵지 않겠느냐는 분들도 있어요. 출연 횟수는 적었지만 '진짜진짜 좋아해'도 저에겐 하나부터 열까지 새롭게 적응해야 해야 하는 것이 많았어요. 주크박스 뮤지컬인데도 노래 두 곡 빼곤 다 모르는 노래였으니까요. 너무 솔직했나? 인터뷰를 많이 해봤지만 전 꾸며서 말하는 건 못해요. 그냥 제가 느끼고 생각하고 경험한 대로 펼쳐놓을 뿐이죠. 그게 답 아닌가요(웃음).”

예상보다 편하고 진솔한 답이다. 길에서 본 모습도 그러했지만 “알은 척해주시는 분들을 덥지만 않으면 안아드리기도 한다”던 얘기도 농이 아닌 듯하다. 이필모는 바람처럼 등장한 신인이 아니다. 그렇다고 기나긴 무명세월 겪은 후에야 진가를 인정받은 늦깎이 배우도 아니다. 20대를 치열하게 무대에서 보내고는 TV단막극을 거쳐 일일드라마, 영화, 주말드라마 순으로 차근차근 배우의 탑을 쌓아온 이다.

“배우란 직업은 참 외로운 것 같아요. 대본만 가지고 자기 내면과 싸움을 해야 한다는 게. 지금 드라마 종영이 8주 정도 남았고, 끝나면 곧장 '남한산성'에 매진할 계획이에요. 실은 첫 대본을 받고 배역을 소화하기가 어렵겠다는 생각에 무척 고민했어요. 소설과도 많이 달라 책을 읽으면서 쌓이는 것들도 도움이 안 되겠더라고요. 차라리 허구의 상황을 머릿속에 그리고 이 상황 안에서 오달제를 재창조해보자고 생각했죠.”

대본 안에서 답을 찾다_김수용

김수용에게 올 한 해는 호사다마, 새옹지마란 단어로 요약될 수 있겠다. 올 초 참여하기로 했던 뮤지컬 '라이프'가 제작사 측의 사정으로 연습 도중 취소되었고, 지병을 앓던 아버지를 떠나보내는 큰 아픔도 겪었다. 여러 여건상 행보가 주춤하나 싶었건만, 김수용은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지방공연으로 8개 도시를 누비느라 생각보다 훨씬 바빴다.

“지금 와서 얘기지만 '라이프'를 못하게 된 게 한편으로는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덕분에 아버지 곁에서 돌아가시는 날까지 간호하고 임종을 지킬 수 있었거든요. 아버지는 매번 제 첫 공연을 보러 오셨어요. 내년까진 사실 줄 알았는데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셨죠. 그런 과정 속에서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고 감사하는 마음이 깊어졌어요.” 

가슴 아픈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지만 그에게서는 그늘 한 줌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일련의 사건을 겪던 중 조광화 연출로부터 '남한산성' 오디션 참여를 제의받았다. 사실 오래전부터 조광화 연출 작품의 출연 제의가 몇 차례 있었지만 스케줄상 본의 아니게 고사했더랬다. 그런 인연 때문에 그는 사실상 자신의 오디션 배역이 주인공인 오달제로 겨냥된 줄도 모르고 당장에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지난해 '노트르담 드 파리' 지방 공연 갔을 때 '남한산성' 소설을 읽었어요. 이렇게나 스케일이 큰 작품 안에 제가 할 만한 젊은 역이 무엇일지 무척 궁금했어요. 오달제 역이 저와 어울릴 것 같다는 말씀을 듣고 무척 흥분했습니다. 저에게는 창작이냐 라이선스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일단 새로운 연기를 하는 게 재미있고 사극은 안 해본 장르라 더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에요.”

김수용은 자신의 한계를 알게 되면 그걸 깨뜨리면서 최고의 희열을 느낀다. 머리도 복잡하고 눈에 띄게 체중이 줄 만큼 고통스러운 이 일이 즐겁다니 이렇게나 낙천적일 수 있나 싶다. “저는 상당히 낙천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치밀해요. 미리 걱정해서 답이 안 나오는 것은 아예 걱정을 안 하지만 미리 걱정해서 0.001%라도 답이 보일 것 같다면 그건 미친 듯 고민해야 직성이 풀려요. 무엇을 하든 마찬가지죠. '남한산성'은 완성된 대본이 나와 봐야 구체적인 이야길 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전 조광화 연출과 고선웅 작가를 믿어요”

'남한산성'은 24곡 정도로 이뤄진 송-스루형 뮤지컬이 될 예정이다. 누구보다 이번 작품이 연극적이길 원했던 터라 김수용은 약간 실망하는 눈치다. 그동안 브라운관도 스크린도 마다하고 뮤지컬을 고집해오던 그가 어느 틈엔가 연기에 대한 갈증을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과거를 통해 오늘을 보다_배해선

올 한 해 그녀의 행보에는 쉼표가 없었다. 최근 몇 달만 해도 연극 '피카소의 여인들'을 마치고 곧장 뮤지컬 '삼총사'에 합류하더니, 연이어 '시카고' 무대에 섰던 배해선은 '남한산성'의 제작발표회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매향의 솔로곡으로 가장 많은 박수를 받았다. 바로 전날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해 시상식에 참석하고 올라오느라 연습할 시간이 없었다지만 그녀의 무대 매너는 나무랄 데 없었다.

“빡빡한 스케줄 같지만 나름대로는 쉰다고 생각해요. 함께 공연한 팀들이 좋아서 여행하는 기분이었는걸요. 다른 색깔의 작품을 만나면 새 에너지가 충전되는 기분이라 그게 오히려 휴식처럼 느껴져요.”

조광화 연출이 '남한산성'의 원작 소설에는 없는 인물 매향까지 만들어 자신에게 맡겼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란 생각에 설레는 기분으로 출연을 결정했다.

“전 작품을 할 때마다 원작에 갇히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해요. 김훈 선생님도 뮤지컬 작품과 소설 작품을 다르게 생각하듯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원작은 훨씬 달라질 수 있어요. 쟁쟁한 스태프들이 오랜 기간 심사숙고해 의견을 나눈 흔적이 묻어나니까 처음부터 과도하게 몰아붙이거나 걱정하고 멈칫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아직 검증 가능한 단계가 아니라서 완성도 높은 작품을 기대해달라고 말하긴 조심스럽네요. 하지만 좋은 마음들이 모였으니 분명히 좋은 작품이 될 것은 분명해요.”

배해선에게 외국 라이선스 작품이니 창작이니 하는 개념은 그다지 중요치 않다. 그녀는 '남한산성'을 현실과 이질감이 느껴지는 사극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살아가는 이야기는 어느 시대나 비슷하다는 것. “관객의 시선으로는 평범한 등장인물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이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민이 될 수 있어요. 이 시대에 찾고자하는 정의는 무엇인가. 내가 믿는 가치관과 충성심, 그것에 대한 목표는 무엇인가. 우리는 모두 선택의 기로에서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다고 생각해요. 난 누구이며 원하는 것은 무엇이고 그걸 얻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할지 누구나 고민하잖아요. 그 시대를 살아나가야만 했던 인간의 고민과 주변 인물들의 삶을 통해 관객은 분명 자기 자신을 비춰볼 수 있을 거예요.”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