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 그 찬란한 기억]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주전자'

  • 최응천 동국대 미술사학과 교수·문화재위원

입력 : 2009.09.07 03:19

박물관100년 특별전 대표유물 [13] 은제도금연화형주전자
화려한 문양에 조형성 탁월
고려 금속공예기술의 총화 미(美) 보스턴미술관에 소장
국립중앙박물관·조선일보 공동기획

흔히 고려 공예를 조선시대와 비교하면서 화려함이 강조된 귀족적인 면모를 특징으로 꼽는다. 정교하고도 세련된 고려 금속공예의 정수라 할 만한 것이 바로 이 은제주전자이다. 미국 보스턴미술관이 이 작품을 소장하게 된 경위는 분명치 않다. 미술관 홈페이지를 보면 1935년 한 개인 펀드를 통해 들어온 것으로 돼 있는데, 아마 그 이전에 미국으로 건너갔을 것으로 보인다.

높이 34.3㎝의 이 주전자는 은을 주재료로 만들고 부분부분 금도금을 해 장식했기 때문에 은제도금(銀製鍍金) 주전자로 불린다. 긴 주구(注口)가 달린 반구형(半球形)의 몸체와 여러 겹으로 중첩된 연화(蓮花) 뚜껑, 그리고 연화 받침과 봉황으로 장식한 뉴(紐·뚜껑 꼭지 부분에 붙어있는 손잡이)로 구성되어 있다. 몸체 아래에는 주전자를 받치는 화형(花形)의 승반(承盤)까지 완벽하게 남아있어 그 가치를 더해준다.

이 주전자가 다른 작품들에 비해 더 돋보이는 것은 몸체의 외면을 24줄로 이루어진 대나무 줄기 형태로 만든 참신한 조형감에 있다. 외면 줄기마다 연화 당초문을 정교하게 음각했고 그 위·아래 단에도 당초문(唐草文)을 새겨 넣은 뒤 바로 이 부분에 도금을 첨가함으로써 화려함을 더했다.

미국 보스턴미술관에 소장된 은제도금연화형주전자(높이 34.3㎝). 긴 주구가 달린 반구형 몸체에 연꽃 무늬 뚜껑이 올려져 있고, 뚜껑 꼭대기에는 날개를 접은 봉황이 솟아있다. 몸체 아래에는 꽃 모양의 받침(승반)을 갖추고 있다./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몸체 중앙으로 높게 솟은 구연(口緣) 위를 연꽃 뚜껑이 덮고, 이 뚜껑 위로 또 하나의 뚜껑이 올려져 있다. 이 뚜껑들은 아래쪽으로 길게 뻗어 내린 두 갈래 못을 통해 내부와 연결되도록 만들었다. 윗뚜껑의 상부에는 날개를 접고 꼬리가 높이 솟은 봉황이 솟아있다.

몸체의 앞쪽에는 대나무 죽순을 형상화한 주구(注口)가 길게 솟아있으며, 반대쪽에는 목부터 몸체 상부에 연결되도록 네 줄로 구성된 손잡이가 유려하게 부착되었다. 아래쪽 승반의 외형은 몸체와 유사한 대나무 줄기 모양이지만 보다 굴곡지게 처리함으로써 마치 연꽃이 핀 듯 화려하다.

12세기 전반에 제작됐을 것으로 추정하는 이 주전자는 중국 사천성(四川省) 팽주(彭州)에서 출토된 남송(南宋)의 은제주자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중국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주전자는 중국 주전자에 비해 조형성이 탁월하고 문양 표현에 자신감이 넘치는 등 모든 면에서 훨씬 탁월하다. 타출문(打出文·안에서 밖으로 두들겨 솟게 한 무늬) 공예의 장식성이 한껏 발휘된 화려한 연꽃과 봉황, 음각과 양각을 적절히 이용한 아로새김[彫金], 세부의 강조가 돋보이는 도금 등 금속공예 기술이 집약돼 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주전자라고 하여도 반론의 여지가 없을 것 같다.

이 은제주전자의 보험가액은 400만달러(50억원)라고 한다. 그런데 과연 얼마의 가격으로 미국에 건너갔을까. 고국을 떠나고 나서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처음으로 한국에서 전시되는 이 은제주전자는 한번 우리 손을 떠난 문화재가 얼마나 돌아오기 어려운지, 또 얼마나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를 교훈처럼 말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