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군대축구 얘기 정말 지겹다고? 천만에…

  • 박돈규 기자

입력 : 2009.08.27 03:45

'스페셜 레터'

모를 일이었다. 군대 얘기, 그중에서도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를 가장 혐오한다는 그들이 바로 그 얘기를 다룬 장면에 깔깔거리고 있었다. 손님이 뜸하다는 화요일, 객석을 가득 채운 관객은 70~80%가 여성이었다. 이 뮤지컬 《스페셜 레터》(박인선 작·연출)는 뭐가 그리 특별한 것일까. 남녀를 강제분단시키는 군대에서 편지 한 장의 힘은 막강했다. 《스페셜 레터》는 닳고 닳은 소재를 재가공해 상투성의 장벽을 사뿐 뛰어넘었다.

무대는 스물일곱 살의 육군 이등병 철재(송욱경)가 화장실에서 편지 쓰는 장면으로 열린다. 그의 친구 은희(하지승)를 김병장(김남호)이 여자로 오해하면서 일은 꼬이는데 덕분에 그의 군 생활은 확 풀린다. 입대영장을 받고 고민하는 은희, 그를 짝사랑하는 후배 순규(최주리)가 이 해프닝에 얽히면서 《스페셜 레터》는 단순한 군대 이야기에서 슬쩍 벗어난다.

뮤지컬《스페셜 레터》에서 군대‘짬밥’이 등장하는 장면. 된장국을‘똥국’이라고 노래한다./악어컴퍼니 제공

관객은 입장할 때 "우리는 전우애로 굳게 뭉쳐진/ 책임을 다하는 방패들이다~"(군가 〈전우〉)를 듣는다. 일석점호도 노래가 됐다. "세상엔 남자 여자만 있는 줄 알았는데 먼저 오신 분들과 늦게 온 놈만 있더라" 같은 대사, 1식3찬1국의 '짬밥' 식판, 전방에 힘찬 함성 3초간 발사!, 우정의 무대, 포상휴가, 복명복창, 경계근무, 고문관, 고무신 거꾸로 신은 애인, 푸닥거리(얼차려), 맛스타, 초코파이…. 동성애 코드까지 군대 하면 떠오르는 것들을 다 재료로 썼다. '군바리'였던 남자에겐 추억의 풍경을, 여성 관객에겐 희극적 대리체험을 선물했다.

축구 같고 격투기 같은 춤을 추며 "쉬지 않고 뛰는 거야/ 병장에게 패스해~"로 흐르는 노래 〈군대스리가〉, 군인들이 합창하는 〈시간아 흘러라〉가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뮤지컬 음악을 전투축구처럼 들어줄 수는 없었다. 올해 초연되자마자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창작뮤지컬상을 차지한 이 작품은 음악이 허약했다. 가창력이 안타까운 배우도 있었다. 배우들의 하체 움직임이 관객에게 잘 안 보인다는 점은 공연장인 SM아트홀의 구조적인 결함이었다.

《스페셜 레터》는 장유정의 《김종욱 찾기》, 추민주의 《빨래》처럼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서 태어난 뮤지컬이다. 소재 발굴, 대중적인 터치, 젊은 배우들의 호흡 등은 박수받을 만하다. 해마다 숱한 이등병이 배출되는 나라에서 《스페셜 레터》는 장래가 밝다. 설정만 있고 존재감은 약한 인물들과 노래들, 그 '지뢰밭'을 뚫을 일만 남았다.

▶11월 1일까지 서울 대학로 SM아트홀. (02)501-78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