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9.08.25 03:16
칠기의 '명장' 임충휴
소품 제작에도 2개월 정성 15세 때부터 배운 '천직'요즘도 하루 5시간씩 작업
◆'인내'로 명장 된 칠공예 '달인'
임 명장은 지난 2004년 11월 노동부로부터 임명된 칠기공예 분야 대한민국 명장이다. 정부는 장인정신이 투철하고 해당 분야 최고 수준의 기능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을 '명장'으로 공인한다.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맡은 분야에 계속 정진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다. 현재 칠기공예 분야에는 임 명장을 포함해 총 7명의 대한민국 명장이 등록돼 있다.
임 명장이 '공장'이라 부르는 작업장은 구리시 갈매동과 성남시 신흥동에 하나씩 있다. 구리에선 장롱이나 화장대 등 큰 물건을, 성남에선 보석함이나 바둑알통 등 작은 물건을 주로 만든다.
지난 17일 오전 신흥동의 4층짜리 상가 반지하에 33㎡(10평) 규모로 자리 잡은 임 명장의 작업실에 들어서자 옻칠 냄새가 코를 찔렀다. "옻 안 탑니까? 나중에 피부가 빨갛게 오르면서 가려울 수도 있어요. 여기서 바둑알통 하나를 만드는 데 2개월 동안 칠하고 벗기기를 10번 이상씩 해야 돼요. 냄새 나고 먼지가 많이 날리니 젊은이들이 할 턱이 있나요…." 성남 작업실에선 초(初)칠 작업을 돕는 40대 여성 한 명이 함께 일하고 있다.

임 명장이 옻칠 공예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인내'이다. 자개를 입힌 바둑알통의 경우 목수에게 주문한 원목이 도착하면 찹쌀풀과 생칠(가공 전의 옻칠), 고운 흙가루를 섞어 만든 반죽을 바르고 삼베를 입힌 뒤 다시 반죽을 바른다. 이어 옻칠을 5~6회 바르고 건조하고 사포로 벗겨내기를 반복해야 한다. 도안에 맞게 자개 작업을 한 뒤 다시 옻칠을 5~6회 발라 말리고 벗겨낸다. 완전히 마른 뒤 조각칼로 옻칠을 벗겨내는 순간 자개가 빛을 만나 반짝이게 된다.
임 명장은 "자개와 옻이 어우러지는 나전칠기는 인내가 필요한 협동작업이에요. 자개 작업은 다른 기술자가 하죠. 사람들은 자개 작업이 더 어렵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칠과 건조가 잘못되면 자개에 빛이 나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먹고살기 위해 옻칠 기술 배워"
임 명장은 전라남도 완도에서 태어나 섬에서 자랐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돈을 벌기 위해 1년 계획으로 무작정 상경했다. 신문배달과 구두닦이 등 고생만 하고 1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간 어린시절 임 명장은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아버지의 말씀에 다시 서울로 올라왔고, 동향 사람이 운영하는 나전칠기 작업장에서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당시 나이 15세였다.
"선배 기술자들 뒤치다꺼리 때문에 고생도 했지만, 고향 바닷가에서 보던 전복 껍데기나 조개 껍데기가 장식품이 돼서 장롱이나 경대에 달리는 모습이 어린 나이에 신기하고 흥미로웠어요. 내 손으로 칠한 뒤 광이 나는 것을 보면 기분이 절로 좋아지는 걸 느끼면서 '이게 내 일이구나'라고 생각했죠."
자기만의 독립된 작업장을 차린 게 28세 무렵 성수동이었다. 임 명장의 솜씨는 한국의 건설회사들이 중동에 진출하던 70년대 말 당시 삼성종합건설이 쿠웨이트 영빈관에 선물로 줄 자개 병풍을 만들어 달라고 할 정도로 입소문을 탔다. 지난해 4월에도 한 대기업 계열사가 외국에 줄 선물이라며 십장생이 그려진 150㎝ 정도 높이의 4폭짜리 자개 병풍을 주문해 김포공항에 직접 배달을 가기도 했다.
90년대 중반 성남시 단대동에 작업장을 마련했다가 IMF 외환위기로 납품한 물품 대금을 받지 못해 부도가 난 뒤 수원 하동에 작업장을 마련한 임 명장은 광교신도시 건설로 작업장을 성남과 구리로 옮겼고, 요즘에도 하루 5시간씩 꾸준히 작업을 하고 있다. 또 옻칠과 자개 작업을 하는 지인들과 매 학기 배재대 칠예과 학생 4명에게 100만원씩을 장학금으로 전달하고 있다. 임 명장은 "이론과 실습을 동시에 배우게 해 칠공예의 맥이 끊기지 않게 하기 위한 작은 노력이다"라고 말했다.
"속된 말로 내가 '뺑끼쟁이(페인트쟁이)'밖에 더 됩니까. 그래도 명장이라도 달았으니 그 자존심 하나로 계속 옻칠공예를 이어갈 수 있는 거죠. 참 고마울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