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II] 퓨전연주로 화합 노래하는 양평 청운면

  • 김경은 기자

입력 : 2009.08.17 03:00

도(道) 우수동아리 최우수상 자비로 악기 구입해 연습 다음 달 전국대회 출전

무대에 오르기까지 한 시간이 채 남지 않았다. 지난달 21일 오전 수원시 인계동 청소년문화센터 앞 공터. 양평군 대표로 '2009 읍·면·동 우수동아리 도(道) 경연대회'에 참가할 예정인 청운면 주민자치센터 퓨전연주반(지휘자 김태수)은 이곳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막바지 연습에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때 색소폰 연주자 박찬정(57·전직 공무원)씨가 "앗!"하고 짧게 탄식했다. 악기의 부품 하나가 빠져버린 거였다. 자칫 대회에 참가 못할 수도 있는 상황. 박씨는 얼른 색소폰을 챙겨 일어나더니 택시를 잡아 타고 114에 전화를 연결한 채 악기점을 찾아 수원시내를 뺑뺑 돌았다. 그리고 제때 악기를 고쳐 무사히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경기도 내 나머지 30개 시·군에서 참가한 30개 팀과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겨룬 결과, 이날 퓨전연주반은 '신고산 타령'과 '뱃노래'를 연주, 가장 좋은 상인 최우수상을 받았다. 심사위원들로부터 '작품성과 구성원 간의 조화, 매끄러운 공연 등 연주가 돋보였다'는 평을 받았고, 경기도를 대표해 전국주민자치박람회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까지 얻었다. 이날 연주를 총괄한 지휘자 김태수(52)씨는 "반원들의 적극적인 활동 의지와 끊임없는 연습이 오늘의 기쁨을 안겨줬다"는 소감을 밝혔다.

청운면은 양평군의 동쪽, 그러니까 경기도와 강원도의 경계 지점에 자리잡은 농촌 마을이다. 특산물 가운데 토종꿀과 수박, 둥굴레가 으뜸으로 꼽히고, 1600여 세대, 3500명 남짓인 주민들의 대부분은 과수원을 운영하거나 농사를 지으며 살림을 꾸린다.

양평군 청운면 주민자치센터 퓨전연주반이 최근 수원에서 열린 ‘2009 읍면동 우수동아리 도 경연대회’에서 연주를 하고 있다. 이날 이들은 ‘신고산 타령’과 ‘뱃노래’를 연주해 최우수상을 받았다./청운면 주민자치센터 제공
지난 2006년 2월 문을 연 청운면 주민자치센터에는 원래 노래반, 색소폰반, 사물놀이반, 기타반, 한국무용반 등 2년째 활발히 활동하는 5개 동아리가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2006년 9월 결성된 색소폰반이다. 전직 파출소장과 전직 공무원 등 주민 4명은 세월이 더 가기 전에 평소 연주해보고 싶었던 색소폰을 배우자고 의기투합하고 색소폰반을 만들었다.

악기는 자비를 들여 직접 구입했다. 인터넷을 샅샅이 검색해 연습용 색소폰을 1대당 60만원씩 주고 각자 구입한 것이다. 이웃마을 용문고등학교 음악교사를 찾아가 연주 기법을 배웠고, 그 후 11월까지 3개월간 죽어라 연습한 끝에 연말 양평군 발표회에 나가 '섬마을 선생님'을 멋들어지게 연주했다. 청운면 주민자치센터 이금순 사무장은 "그때 주민들 반응이 정말 대단했다"며 "서로 색소폰을 배우겠다며 나선 사람만 10명이 넘었다"고 말했다.

처음에 각 동아리들은 반별로 따로 연습했다. 필요한 악기는 주민들이 자기 돈을 들여 모두 구입했다. 어느 날 각 반의 반장들은 "지금까지 배운 걸 한데 녹여서 퓨전연주를 해 보자"는 데 동의했다.

그리고 나머지 반원들의 뜻을 모아 퓨전연주반을 만들었다. 이 마을에 퓨전연주반이 등장한 건 지금으로부터 꼭 1년 전인 지난해 여름. 퓨전연주반은 이름 그대로 색소폰과 사물놀이, 기타는 물론 노래와 한국무용까지 하나가 돼 음악을 연주하는 '주민들의 밴드'가 됐다.

마을에서 벌어지는 행사에는 반드시 이들이 찾아가 흥을 돋웠다. 50대 후반에서 60대 중반이 대부분인 반원들은 다들 생업인 농사에 매달리느라 하루종일 연습할 수는 없었지만 정해진 연습시간만큼은 꼬박꼬박 지켰다. 도 대회 출전을 앞두고 퓨전연주반은 두 달 전부터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1주일에 세 차례식 다함께 모여 연습했다. 대회 열흘 전부터는 매일 연습했다.

이 과정에서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많았다. 수박 농사를 짓는 사물놀이반 남선녀(여·51)씨는 도 대회 당일 수박을 출하해야 해 대회 참여가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그러자 같은 반 남성 5~6명이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남씨의 수박을 다 따서 출하해 주고 오전 8시40분에 그와 함께 대회가 열리는 수원으로 출발했다. 고추 농사를 짓는 색소폰반 이창규(64)씨는 다음날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 당장 고추밭에 비닐을 씌우러 가야 했지만 연주반 연습과 겹쳐 발만 동동 굴렀다. 결국 신나게 연습하고 오후 9시가 넘어 집에 와 보니 부인이 밭에서 혼자 비닐을 씌우고 있었다. 도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을 때, 이씨는 "모든 영광을 부인에게…"라며 고마움을 표했다.

이들이 도 대표로 참가할 제9회 전국주민자치박람회는 다음달 24~26일 인천광역시 문학경기장에서 열린다. 인천광역시남구와 (사)열린사회시민연합이 주최하고 행정안전부와 인천광역시가 후원하는 이번 박람회에서 이들은 대회 둘째날인 25일 오전 10시 주민자치센터 우수동아리 발표회에 참가한다.

본격적인 연습은 오는 24일부터 시작되지만 벌써 집집마다에선 각자 다루는 악기 소리들이 시도 때도 없이 비어져 나온다. 주민들은 "도 대표로 대회에 나가는 건 두 번 다시 없을 기회이기 때문에 다들 자기 일처럼 생각하고 연습에 임한다"며 "시·도 우수동아리 16팀이 참여하는 전국대회에서도 최고의 성적을 거둘 수 있도록 올 여름 최선을 다하겠다"고 입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