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北)악기 소해금 들고 장윤정 앨범에 참여했죠"

  • 강철환 기자

입력 : 2009.08.17 02:47 | 수정 : 2009.08.17 07:20

탈북 박성진씨, 15일 탈북청소년돕기 콘서트서 소해금 연주

"북한에서 만들어진 소해금의 선율이 남쪽에도 많이 흐르도록 하겠습니다."

광복절인 15일 이화여대 ECC 삼성아트홀. 탈북 청소년들을 돕기 위한 '뷰티풀 드림콘서트'에 처음 보는 악기가 등장했다. 탈북자 박성진(39)씨가 들고 나왔다.

소해금은 2현의 해금을 4현으로 바꾼 것이다. 북한 당국의 민족악기 현대화 작업 때문에 새로운 악기가 탄생한 셈이다. 소리만 들으면 해금과 바이올린을 합쳐놓은 듯하다. 북한 악기인 만큼 현재까지 국내에서 이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이는 박씨뿐이다.

박씨가 소해금을 배우게 된 것은 인민학교(초등학교) 시절 박씨의 음악적 재능을 알아본 선생님이 평양예술학원 입학을 주선하면서부터다. 다룰 악기는 예술학원 선생님이 정해줬다. 박씨는 "원래 여성들이 주로 다루는데 (선생님이) 내 적성에 소해금이 맞는다고 본 것 같다"고 했다.

탈북자 박성진씨 전통 해금을 변형시킨 소해금 연주자 박성진씨./최순호 기자 choish@chosun.com

평양예술학원 졸업 후 인민군 총정치국 선전대에서 10년간 '소해금 연주자'로 군 복무를 했다. 군 제대 후 전공을 살려 밥벌이를 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내로라하는 인민배우나 인민예술가들도 식량난 앞에서 끼니 걱정을 해야 하는 판이다. 박씨는 결국 분신과도 같은 소해금을 버리기로 결심하고 평양상업대학 봉사학부에 들어갔다. 나이 서른에 인생의 진로를 변경한 것이다.

그렇게 평범한 직장인을 꿈꾸던 그에게 운명은 또 한 번의 시련을 안겼다. '김책공대 물리학과 강좌장'이란 잘 나가는 직책을 갖고 있던 아버지가 2003년 정치적 사건에 휘말리게 된 것이다. 아버지를 포함한 6명의 가족은 화(禍)를 피해 목숨 건 탈북을 감행했다. 탈북엔 성공했지만 중국에 숨어 있는 동안 공안에 발각되는 바람에 북송된 2명의 누이는 아직 북한 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박씨는 "누이들이 겪고 있을 야만적인 고문과 고통을 생각하면 하루도 발을 뻗고 잠을 청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북한 인권문제만 나오면 열 일 제쳐두고 나선다. 북한인권시민연합이 주최한 이번 콘서트에 처음 참여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2007년 남한에 온 그는 전공을 살리면서 가수의 꿈을 키우고 있다. 국내 정상의 트로트 가수 장윤정의 3집 앨범 제작 때, 중국을 통해 공수해온 소해금으로 직접 연주에 참여한 적도 있다. 그는 "북쪽에만 있는 악기지만 나로 인해 남한 사람들도 소해금과 친숙해지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