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요, 백건우"

  • 프랑스 디나르=글·사진 음악평론가 장일범

입력 : 2009.08.13 03:05

20주년 맞은 프랑스 '디나르 페스티벌'
15년간 음악감독 맡으며 개성 넘치는 축제로 키워 개막 연주서 기립박수 받아

프랑스 대서양 연안 에메랄드 해변의 아름다운 휴양도시 디나르. 평소에는 인구가 10만명에 불과하지만 휴가철이면 50만명까지 늘어나는 이 도시는 올해로 20년째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이 흐르고 있다. 1989년 음악애호가 스테판 부테가 시작한 '디나르 페스티벌'이 올해 20주년 성인식을 자축하면서 '해피 버스데이(Happy Birthday)'라는 주제를 붙였다.

1994년 스테판 부테가 심장마비로 급서하면서, 평소 그에게 음악적 조언을 해주던 피아니스트 백건우에게 음악감독을 맡아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백건우는 그 뒤 15년째 이 페스티벌을 맡아오면서 프랑스에서 가장 주목받고 개성 넘치는 국제음악제로 탈바꿈시켰다. "올여름 진정한 음악을 들으려면 디나르로 가라"는 프랑스 언론의 강력한 찬사를 받고 있다.

피아니스트 백건우(왼쪽)가 프랑스 디나르 페스티벌에서 펜데레츠키(오른쪽)의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가의 지휘로 협연한 뒤, 관객들의 박수에 답하고 있다./음악평론가 장일범

지난 8일 밤, 19세기 성벽을 배경으로 펼쳐진 소나무 울창한 숲 속 공원에서 디나르 시민들을 위한 무료 야외 오프닝 음악회가 열렸다. 3500여명에 이르는 청중이 운집한 가운데, 폴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작곡가 펜데레츠키가 지휘한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8번이 브레타뉴 주립 오케스트라에 의해서 첫 곡으로 연주되었다.

2부에서는 오랜 시간 두터운 음악적 우정을 쌓아온 펜데레츠키와 백건우의 협연 무대가 이어졌다. 뉴욕 9·11테러를 보고 충격에 휩싸인 펜데레츠키가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이다. 2005년 백건우에게 개정판을 헌정했으며 마드리드에서도 함께 연주했던 이 곡은 박진감 있는 서두로 출발해서 점차 격렬하게 펼쳐져 나갔다. 갑자기 무대에는 정적이 찾아들고, 피아노 솔로의 아름답고 달콤한 천상(天上)적인 코랄이 흘렀다. 펜데레츠키는 분노 속에서도 이 대목을 가장 먼저 썼다고 한다. 마치 희생된 영혼들을 천국으로 보내주는 듯 크리스마스 성가처럼 아름다운 이 곡에는 작곡가의 가톨릭적 세계관이 자연스레 드러나 있다.

곡이 모두 끝나자 디나르의 청중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기립해서 뜨겁게 박수를 보냈다. 디나르의 피아니스트이기도 한 백건우를 그들이 얼마나 자랑스러워하고 사랑하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22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디나르 페스티벌은 무엇보다도 세계를 대표하는 실력파 피아니스트들이 대거 찾아와 다채로운 음악 세계를 펼쳐보이는 것이 큰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