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ABC] 지하의 쇼팽도 벌떡 일어날 '초호화 축제'

  • 김성현 기자

입력 : 2009.08.10 03:05

탄생 200주년 앞두고 폴란드서 국제 음악제
정상 피아니스트 총출동
선·후대 작곡가 음악 조명 당시 음악계 모습 재현

16~31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리는 ‘제5회 국제 쇼팽음악제’포스터.

'피아노의 시인' 프레데릭 쇼팽(Chopin·1810~1849)의 탄생 200주년이 되는 2010년을 한 해 앞두고 작곡가의 모국(母國) 폴란드는 대대적인 기념 사업에 들어갔습니다. 바르샤바에서 이달 16일~31일 관현악 콘서트 11차례, 피아노 리사이틀 13차례를 여는 '제5회 국제음악제'로 한껏 분위기를 달구고 있습니다. 수십 개국에서 참여하는 연주자만 300여 명에 이릅니다.

블록버스터 급이라고 해도 좋을 초호화 캐스팅이 먼저 눈에 띕니다. '피아노의 여제(女帝)' 마르타 아르 헤리치(Argerich)부터 에마누엘 액스(Ax)와 니콜라이 루간스키(Lugansky), 알렉산더 멜니코프(Melnikov)까지 당대의 정상급 피아니스트들이 총출동했습니다. 폴란드의 안방마님이라고 할 수 있는 바르샤바 필하모닉(지휘 안토니 비트)은 물론, 18세기 오케스트라(지휘 프란츠 브뤼헨)와 샹젤리제 오케스트라(지휘 필립 헤레베헤)까지 현대와 고(古)음악을 넘나드는 악단의 면면도 화려하기 그지없습니다.

이번 축제가 더욱 의미 있는 건, 사려 깊으면서도 뚜렷한 음악제의 성격입니다. 폴란드의 국민 음악가나 영웅으로 서둘러 단정짓기보다는, '쇼팽과 당대의 유럽'이라는 제목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던 선대와 후대 작곡가의 작품들을 조명하면서 당시 유럽 음악계의 모습을 총체적으로 살피려 애쓰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쇼팽 당대에 독일에서 활동했던 멘델스존(1809~1847)이나 슈만(1810~1856)의 피아노 음악을 나란히 연주하는가 하면, 쇼팽의 폴란드 후배 작곡가인 루토스왑스키(1913~1994)의 관현악을 함께 편성하기도 합니다. 공시적(共時的)이면서 통시적(通時的)으로 쇼팽의 음악을 재구성하겠다는 의도입니다.

축제와 함께 진행하는 쇼팽의 피아노 작품 전곡(全曲) 음반 작업에서도 이 같은 자신감과 야심은 그대로 나타납니다. 프레데릭 쇼팽 협회는 쇼팽이 남긴 피아노 곡을 단순히 재(再)녹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진정한 쇼팽(The Real Chopin)'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쇼팽 당시에 사용했던 19세기 초반의 피아노를 사용했습니다.

이 음반 작업에는 역대 쇼팽 국제 콩쿠르 입상자들이 대거 초청받았습니다. 1965년 우승자인 베트남의 당 타이 손은 실황 녹음에서 18세기 오케스트라와 함께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전곡을 훨씬 더 담백하면서도 투박하게 표현해냅니다. 1955년 3위 입상자인 푸총(중국)은 쇼팽의 〈마주르카〉에 도전합니다. 제16회 쇼팽 콩쿠르가 열리는 내년에는 작곡가에 대한 경배가 절정에 이를 것으로 보입니다.

쇼팽 기념사업은 뚜렷한 주제의식과 치밀한 사전준비야말로 기념사업의 필수요건이라는 걸 보여줍니다. 폴란드의 사례를 보면 우리는 어떤 음악적 자산을 지니고 있고, 어떻게 가꿔나가고 있는지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