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인생은, 짝사랑만 하다 죽거나 과감하게 저지르거나

  • 박돈규 기자

입력 : 2009.08.06 03:24

연극 '갈매기'

극단 골목길의 연극 《갈매기》(연출 박근형)는 짝사랑 같았다. 사랑과 증오, 단념과 질투, 꿈과 현실, 삶과 죽음 등 정반대이면서 종종 한몸인 짝패들이 쏟아져 나왔다. 한없이 욕망하면서도 저항하고 밀어내는 힘, 포기한 것 같으면서도 꿈꾸는 인물들을 보여주며 관객을 집중시켰다.

연극계 주류와는 다른 길로 간 연출가 박근형의 연극 인생이 어쩌면 '짝사랑'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청춘예찬》 《경숙이, 경숙아버지》 《너무 놀라지 마라》 등을 통해 그는 "연극이 꼭 고상해야만 하느냐"고 반문했다. 희망 없는 청춘, 무기력한 아버지, 헝클어진 가족…. 박근형이 그동안 확대해 그려낸 풍경들은 체호프의 《갈매기》와 겹쳐지는 지점이 많았다. 도망치고 싶어도 물을 떠날 수 없는 갈매기처럼, 방황하고 서성이는 인물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갈매기》의 주인공 코스차(김주완)와 엄마 아르카지나(서이숙)./극단 골목길 제공
무대는 선착장 같다. 검게 차려입은 마샤(정세라)는 "내 인생의 상복(喪服)"이라며 술을 마신다. 그녀가 짝사랑하는 코스차(김주완)는 배우를 꿈꾸는 니나(정진아)에게 "넌 내 상상력의 원천"이라고 말한다. 코스차는 배우인 엄마 아르카지나(서이숙)가 평범한 사람이기를 바라지만, 아르카지나는 유명 소설가 트리고린(김영필)과 연인 사이고, 트리고린은 니나를 마음에 품는다. 주어진 삶에 만족하는 인물은 단 한 명도 없고, 다들 '남의 것'을 욕망한다.

박근형의 《갈매기》는 그 끝없는 욕망의 사슬을 잘 드러냈다는 점에서 대중적이다. "성공은 보드카 같은 거지. 마실수록 취하고 결국 마룻바닥에 쓰러지고 말지" 같은 트리고린의 명대사가 귀에 쏙 들어왔다. 김주완의 코스차는 이 연극을 지배하는 이중성을 읽어냈고 자살이라는 결말을 설득시켰다. 니나 정진아는 맑았지만 부서질 것 같은 섬세함은 부족했다. 정세라의 마샤가 돋보였고, 서이숙·김영필·이대연·박원상 등이 안정적으로 극을 떠받쳤다.

전체적으로 정리가 덜 된 느낌이었지만 마지막 장면은 좋았다. 입버릇처럼 "배우가 꿈이었는데…" 하던 소린(박정순)의 자연사와 코스차의 자살을 포갰다. 평생 몰래 짝사랑만 하다 죽거나, 위험을 무릅쓰고 저지르거나. 박근형이 해석한 체호프의 인생관이다.

▶30일까지 서울 게릴라극장. (02)763-12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