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옻칠장이', 일본인의 혼을 또 빼앗다

  • 모리오카(盛岡)=선우정 특파원

입력 : 2009.08.03 03:10

日서 활동 전용복씨, 이와야마 칠예미술관 재개관… 관람객 몰려
日 문화재 '메구로가조엔'18년전(前) 복원하며 실력인정 받아
재개관 맞춰 18점 새로 선보여 배용준 옻 작품도 1개 전시

1일 일본 동북지방 이와테(岩手)현 모리오카(盛岡)시의 외곽 이와야마(岩山) 중턱이 붐볐다. 주일 한국대사, 이와테 지사, 모리오카 시장 등 '귀빈'과 함께, 일본 각지에서 모인 600여명이 땡볕을 막은 천막 안에서 이와야마칠예(漆藝)미술관 개관을 기다렸다. 이름 그대로 '옻(漆) 예술'의 세계 최대 미술관이다. 8개월 동안의 휴관을 끝내고 이날 오전 10시 다시 문을 열었다.

개관을 기다리던 닷소 다쿠야(達增拓也) 이와테현 지사에게 미술관의 의미를 물었다. "일본 최대 옻 산지 이와테와 세계 최고 옻 예술가 전용복 선생이 만난 곳." 2004년 개관 때 한국의 옻 미술가 전용복(全龍福·56)에게 미술관 전체를 무상으로 빌려준 곳. 이번 재개관 때 시설 개보수를 지원한 곳도 일본 이와테현 모리오카시였다.

전용복 이와야마칠예미술관장은 스스로 "옻장이"라고 말하지만, 이미 일본에서 '최고 옻 예술가'로 공인받고 있다. 1991년 끝난 '일본 옻 예술의 보고(寶庫)' 도쿄 메구로가조엔(目黑雅敍園) 복원작업이 결정적 계기였다. 그 후 그는 일본에 활동의 터전을 잡았다. 예술가를 알아주는 일본에 그가 '잡혔다'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일 것이다.

일본 이와테현 모리오카시 이와야마칠예미술관 관장인 전용복 선생의 작품 제작 모습./모리오카=박종인 기자 seno@chosun.com
그동안 미술관의 대표작은 '이와테의 혼'이었다. 가로 60㎝ 패널 30장을 이어붙인 가로 18m, 세로 2m 크기의 대작이다. 전 관장은 "지안(集安)의 고구려 벽화에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이번에 대표작을 '귀향(歸鄕)'으로 바꿨다. 가로 5.4m, 세로 1.8m 크기의 패널에는 태어난 강으로 돌아가는 연어 떼의 모습이 담겨 있다.

"연어는 4~5년을 타지에서 떠돌다 고향의 강물로 돌아가 죽습니다. 그리고 육신을 새끼의 양분으로 제공하지요. 생명의 본성, 저 자신의 염원이기도 합니다." 메구로가조엔 복원 이후 18년, 미술관 개관 이후 5년이 지났다.

권철현(權哲賢) 대사는 재개관식 축사에서 "먼 길을 온 이유"에 대해 "양국 문화의 진수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개관식 직후 미술관을 돌아보던 그에게 '감상'을 묻자, "사람은 가치를 알아주는 곳에서 일생을 마치는 법입니다. 결국엔 데려가야지요. 우리가 가치를 알아야지요"라고 말했다.

지난 1일 재개관한 일본 이와테현 모리오카시 이와야마칠예미술관에 일본 전역에서 600여 관람객이 몰려와 대성황을 이뤘다./모리오카=선우정 특파원
전 관장은 '귀향'과 함께 작품 18점을 새로 선보였다. 기존 작품을 합쳐 150여점이 전시됐다. 최고 5250만엔(현재 환율로 6억8000만원)에 모두 팔린 그의 손목시계 작품(일본 시계업체 '세이코'와 합작) 사진과, 옻을 통해 음색을 재창조한 악기의 실물 작품도 전시됐다. 관람객 사키야마 다카유키(41)씨는 "옻과 악기라는 새로운 콘셉트에 끌려 미술관을 찾았다"고 말했다.

이날 관람객 상당수는 '욘사마' 배용준의 일본 팬들이었다. 아오모리(靑森)에서 온 관람객 에가와 마사코(52)씨는 "전 선생의 책에서 욘사마가 이곳에 머물렀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말했다. 배용준은 지난 2월 일주일 동안 미술관에서 숙식하면서 옻 예술을 사사(師事)했다. 그는 현재 명예관장이다. 그가 보내온 축사 영상이 공개되자 "와!" 하는 함성이 터졌다. 작품도 한 점 전시됐다. 가로 2m, 세로 0.8m 크기의 '愛(애)'. 본인은 만족하지 못한 연습작이라고 한다.

"옻은 유구한 역사적 배경, 정신적 예술에서 육체적 건강에까지 작용하는 다양한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이 옻의 능력을 어떤 방식으로든 세상에 알리려는 것이 제 인생의 사명이지요." 전 관장은 웃으면서 "나는 약장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