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세 첼로 노장을 위해… 대관령의 밤은 뜨거웠네

  • 용평=김성현 기자

입력 : 2009.08.03 03:12

대관령국제음악제 파리소, 개막 연주회

88세 첼로 노장을 위한 밤이었다. 지난 31일 강원도 용평리조트 눈마을홀에서 개막한 '제6회 대관령국제음악제'는 브라질 출신의 미국 첼리스트 알도 파리소(Parisot)를 무대로 불러냈다. 파리소는 1958년부터 반세기 이상 예일대에 재직하면서, 지안 왕(중국)과 장한나 등을 가르친 명연주자이자 교육자로 유명하다. 그는 지난 2004년 제1회 대관령국제음악제부터 꾸준히 참가하고 있으며, 2007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첼로 콩쿠르를 이 음악제에서 열기도 했다.

파리소는 제자 19명으로 구성된 첼로 앙상블을 직접 지휘했고, 아내 엘리자베스 파리소(피아노)는 무대 뒤편에서 묵묵히 남편을 반주했다. 예일대와 음악제 등을 통해 길러낸 제자와 아내가 파리소의 지휘에 맞춰 연주한 포퍼의 '3개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레퀴엠'에는 낭만적 정취와 고전적 기품이 공존했다.

파리소의 동료이자 브라질 출신의 명작곡가인 빌라로부스(Villa-Lobos·1887~ 1959)의 〈브라질풍의 바흐 5번〉에서는 소프라노 유현아가 협연을 맡았다. 그녀의 노래가 끝나자 파리소가 먼저 나직이 "브라보"라고 외친 뒤, 무대 위에서 박수를 이끌었다.

7월 31일 강원도 용평리조트 눈마을홀에서 열린 ‘제6회 대관령국제음악제’ 개막 연주회에서 알도 파리소(오른쪽)의 지휘로 소프라노 유현아가 빌라 로부스의 ‘브라질풍의 바흐 5번’을 부르고 있다./대관령국제음악제 제공
파리소는 1940년 빌라로부스와 처음 만난 뒤 평생 우정을 나눴으며, 작곡가의 첼로 협주곡을 지난 1955년 뉴욕 필하모닉과의 협연으로 초연했다. 파리소는 "그의 아파트에서 내가 첼로를 연주하면 그는 작곡을 하고, 그의 아내는 정성껏 점심을 차려주었다. 야한 농담도 곧잘 했던 작곡가는 내가 평생 만났던 사람 가운데 가장 유쾌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개막 연주회 직후 기자회견에서도 파리소는 한국 음악계와의 인연에 대해 이야기를 쏟아놓았다. 그는 "줄리아드 시절 내게 6년간 배웠던 첼리스트 장한나가 나중에 훌륭하게 성장한 뒤, 자신에게 가장 큰 영감을 주었던 스승이 로스트로포비치(Rostropovich)라고 말해 한편으로는 속상하기도 했다"며 웃었다. 파리소는 또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에는 어린 음악 꿈나무들이 너무나 많고 이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은 큰 즐거움"이라며 "이 음악제가 특별한 이유도 이 꿈나무들이 주인공이며, 우리 어른들은 손님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관령국제음악제는 개막 후 첫 주말이던 2일까지 사흘간 평균 객석 점유율이 90%를 웃돌 정도로 빠르게 정착했지만, 아직 고민거리도 적지 않다. 올해 개관 예정이던 알펜시아 리조트의 전용 콘서트홀(630여석) 개관이 1년 연기됐다. 파리소는 "대관령에서 유일하게 맘에 들지 않는 것은 음향이 좋지 않은 연주회장 시설"이라고 했고, 김진선 강원도지사는 "설계 변경 등으로 공사가 늦어지는 바람에 차질이 생겨 죄송스럽다. 내년 6월까지는 완공 예정"이라고 말했다.

작곡가 강석희와 김진희의 창작곡 초연이 잇따랐던 예년에 비해 올해는 초연 작품이 줄어든 대신, 엘가의 〈사랑의 인사〉와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 가운데 '백조' 등 소품이 대폭 늘어난 것도 변화다. 대중성과 실험성, 전통과 혁신이라는 복잡하고 까다로운 기로 위에 이 음악제는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