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클래식 애호가] [5·끝] "내 음반 3분의 2는 현대음악" 1세기 모차르트를 찾는 남자

  • 김성현 기자

입력 : 2009.07.30 02:36

송주호 EBS기술연구소 연구원

서울시향 단원으로 활동하다가 지난해 런던 필하모닉으로 진출한 바이올리니스트 김정민씨가 영국으로 가기 직전, '출국 리사이틀'을 열었다. 김씨는 한국의 현대음악을 수소문했고, 김현민의 소나타를 찾아냈다. 작곡가는 "어떻게 내 작품을 알았느냐?"며 놀라워했다. 생면부지(生面不知) 사이였던 연주자와 작곡가를 연결해 준 사람은 송주호(33) EBS 기술연구소 연구원이었다.

지난 2004년 오희숙 서울대 음대 교수는 '20세기 음악'(심설당)이라는 책을 펴내면서 서문에 "무서운 음악 아마추어 송주호 연구원은 날카로운 시각에서 많은 오류를 잡아주었다"고 썼다. 전공자가 비전공자에게, 교수가 애호가에게 공개적으로 감사의 뜻을 나타낸 것도 이례적인 일이었다.

음악 애호가도 '업종 분화'하는 시대다. 고(古)음악과 오페라, 발레 등 듣는 이의 취향도 다변화하는 때에, 송씨가 화두로 붙잡은 건 까다롭고 난해하기로 악명 높은 현대음악이다. 동호회에서 말도 꺼내지 못하게 하는 수난을 겪고, "잘난 척하려는 것 아니냐"는 핀잔도 받지만 송씨는 "현대는 다양성의 시대이며,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 음악계나 사회를 모두 건강하게 만든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송주호씨가 서울 도봉동 자택의 방 하나를 가득 채운 현대음악 음반 사이에서 웃고 있다. 그에게 음악은 사진처럼 감옥이면서 동시에 또 하나의 세상일지도 모른다./박동주 인턴기자(중앙대 사진과 3년)

처음엔 그의 취향도 무척 '일반적'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세 살 위인 형이 음악 숙제를 한다며 베토벤의 교향곡 3번 '영웅' 테이프를 사 들고 왔어요. 그동안 모르고 있던 미지의 세계가 활짝 열렸죠." 형은 1년쯤 클래식 음악을 듣다가 그만뒀지만, 동생은 형과 누나가 사준 음반을 차곡차곡 밟아나갔다.

슈만과 드보르자크의 교향곡을 즐기던 취향이 '정상 궤도'에서 이탈하기 시작한 건 고교 1학년 때쯤이었다. 정명훈이 지휘한 프랑스 작곡가 올리비에 메시앙의 〈투랑갈릴라 교향곡〉 음반을 학교 앞 소매점에서 사서 오디오에 걸어 넣었다. 그 순간, 송씨는 "처음 들어보는 화려한 음색에 충격을 받고 그동안 내가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 뒤 쇼스타코비치부터 쇤베르크와 베베른까지 20세기 작곡가의 음악을 구하기 위해 사방팔방 뛰었다. 그는 "베토벤이나 말러 애호가는 수백~수천 장까지 얼마든지 수집할 수 있지만, 현대음악은 음반이 하나라도 있으면 다행"이라며 웃었다. 지금도 그가 갖고 있는 음반 5000여 장 가운데 현대음악이 3분의 2가량을 차지한다.

송씨는 현대음악 앙상블 '소리'의 프로그램 해설을 맡고, 여러 잡지에 현대음악에 관한 글을 기고하고 있다. 존 케이지의 〈소나타와 간주곡〉을 듣고서 "정말 단아하지 않습니까?"라고 이야기하고, 쇤베르크의 〈첼로 협주곡〉을 "유머 넘친다"고 말해서 주변을 긴장시킨다. 그는 "어디로 향할지 알 수 없고 언제나 새로워서 정체하지 않는다는 점이야말로 현대음악을 듣는 묘미"라고 말했다.

"모차르트와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수많은 작곡가 가운데 모차르트만 남은 것처럼 현대음악 가운데 90%는 쓰레기일지 몰라요. 하지만 그렇기에 나 스스로 판단하고,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듯한 재미가 크지요."